필자가 아마 한 인물에 대해서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뉴스를 찾아봤던 사람이 있었나 생각하면 마크헌트와 더불어 브록레스너가 생각이 난다. 몇 번 언급했지만 헌트는 2001년 K-1 wgp 우승 이후에 관심갖는 파이터가 되었고 브록레스너는 2002년 WWE에 데뷔하면서 처음 봤는데 워낙 임팩트가 강하고 WWE 차세대 슈퍼스타로 밀어줬던 탓에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오죽하면 별명 또한 'The Next Big Thing'이었으니...(그러고보니 어찌저찌해서 둘이 UFC200에서 맞붙었다ㅋㅋ물론 결과는 레스너의 약물 검출로 무효처리 됐지만)
근데 이 키 190cm에 몸무게 130kg에 육박하는 괴물의 인생사도 보면 참 다사다난했다. 피지컬에 걸맞게 대학시절 NCAA를 씹어먹던 인물이었는데 아마추어 자유형 레슬링 챔피언부터 해서 WWE, UFC까지 챔피언을 지냈으니 종목을 불문하고 격투기 관련된 분야는 짧게나마 휘어잡던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다른건 다 들어봤어도 NCAA를 모를 수도 있으니 간단히 설명하면, 미국의 대학 스포츠를 관리하는 일종의 단체인데 흔히 '전미 대학 체육 협회'라고 부른다. 역사가 프로스포츠의 역사보다 길기 때문에 팬층도 두터우며 농구나 미식축구같은 인기 종목에선 어지간한 국가대항전 급 이상이다. 특히 레슬링은 이 대회에서 8강에 드는 선수들을 '올 아메리칸'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미국 대학 스포츠인들에게 굉장한 긍지이자 자부심이라 볼 수 있다. 브록레스너는 NCAA 1부에서 -130kg급 자유형 레슬링 우승자이고 실제로 전적이 111전 106승 5패라는 승률이 95%가 넘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브록 레스너의 인생은 단순한 스포츠 스타의 성공담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대학 레슬링 무대를 제패한 뒤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빠르게 정상에 오른 인물 중 하나가 되었고, 그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미식축구에 도전했다. NFL의 문턱에서 좌절한 뒤에는 MMA라는 새로운 전장으로 뛰어들어 UFC 헤비급 챔피언까지 차지했다. 그리고 다시 WWE로 돌아와 오랜 세월 최정상급 스타로 활약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이 모든 분야에서 단순히 이름만 알린 것이 아니라 실제 경쟁력을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대학 레슬링에서는 전국 챔피언, 프로레슬링에서는 세계적인 흥행 카드, 종합격투기에서는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한 종목에서 성공한 뒤 다른 종목으로 옮기는 선수는 많지만, 레스너처럼 서로 다른 세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2026년 8월, 레스너는 WWE 섬머슬램에서 오바 페미에게 패한 뒤 프로레슬링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는 링 위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격투 스포츠에서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부터 그의 삶을 다섯 장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시골 농장에서 성장한 소년이 어떻게 ‘비스트 인카네이트’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마지막에는 왜 그토록 거대했던 무대를 떠나기로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1. 사우스다코타의 농장 소년, NCAA 헤비급을 정복하다 — 괴물의 탄생


그가 처음부터 프로레슬링 스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레스너의 운동 인생을 결정한 핵심 종목은 아마추어 레슬링이었다. 미국의 학교 레슬링은 단순한 체력 훈련이 아니라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과 순간적인 판단력, 지구력을 종합적으로 겨루는 스포츠다. 특히 헤비급 선수에게는 거대한 체격만으로 승리하기 어렵다.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기술, 넘어지지 않는 균형 감각, 폭발적인 순간 가속력이 모두 필요하다.
레스너는 비스마르크 주립대학에서 활동하며 NJCAA 전국 챔피언에 올랐고, 이후 미네소타대학교로 옮겨 NCAA 디비전 I 무대에 도전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신체적 장점과 레슬링 기술을 결합하며 전국적인 유망주로 성장했다. 마침내 2000년 NCAA 디비전 I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단순히 힘이 센 선수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스너는 당시 대학 레슬링에서 기술과 신체 능력을 모두 갖춘 정상급 선수였다. 훗날 MMA에서 테이크다운과 상위 포지션 장악을 앞세워 상대를 압박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시기의 훈련이 있었다. WWE에서 상대를 번쩍 들어 올리고, UFC에서 거구의 파이터를 바닥으로 끌고 가는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대학 시절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사람들 가운데에는 WWE 관계자들도 있었다. 레스너는 NCAA의 우승 경력을 바탕으로 올림픽 레슬링 상비군까지 선발되었으나, WWE에서 먼저 이 괴물을 낚아챘다. 훗날, 레스너도 당시에 WWE를 선택한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 했으며, 넉넉치 않았던 생활 앞에 현실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아무튼 레스너는 2000년 NCAA 우승을 전후해 프로레슬링 진출의 기회를 잡았는데 당시 그에게는 이미 탄탄한 레슬링 경력과 압도적인 체격, 카메라 앞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감이 있었다. 대학 레슬링 챔피언이라는 성취는 종착점이 아니라,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2. WWE를 정복하고 스스로 왕좌를 떠나다 — NFL이라는 두 번째 꿈



이후에도 커트 앵글과의 대립, 월드 챔피언 등극 등 굵직한 성과를 쌓으며 단기간에 메인 이벤트급 스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레스너는 WWE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 생활에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레슬링은 경기 당일의 퍼포먼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장기간의 이동, 잦은 경기와 방송 출연, 끊임없는 캐릭터 관리가 이어진다. UFC가 소개한 그의 경력 회고에 따르면, 레스너는 WWE를 떠나기 전 1년에 200~300일가량 길 위에서 보내는 생활을 경험했다. 처음엔 돈을 선택해서 선택한 WWE였지만 워낙 바쁜 생활 탓에 와이프와 이혼도 하는 등 개인사에 있어서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자유롭게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고 싶어 했고, 결국 2004년 WWE를 떠났다. 이 당시 마지막 경기가 골드버그와의 경기였는데 골드버그 또한 2004년 레슬매니아를 마지막으로 단체를 떠나는 상황이라 둘의 경기는 역대급 노잼 매치로 전락했고 특별심판이었던 스톤콜드가 둘에게 스터너를 날린게 가장 큰 환호성을 받았다...
그가 선택한 다음 목표는 놀랍게도 NFL이었다. 대학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지 않았던 레스너가 세계 최고의 미식축구 리그에 도전한 것이다. 그는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훈련 캠프에 참가했지만, 이미 오랜 기간 다른 종목에 집중했던 데다 미식축구 경험이 부족했다. 피지컬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NFL에서도 나쁘지 않은 운동신경을 보여줬지만 종목 특성 상 타 플레이어와의 호흡과 작전이 중요한 미식축구이기에 레스너는 이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의 NFL 선수 생활은 실패라 볼 수 있다. 여기에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부상 문제까지 겹쳤다. 결국 정규 시즌 로스터 진입에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도전 자체를 완전한 우스갯거리로 볼 수는 없다. 레스너는 제한된 준비 기간과 경험 부족에도 프리시즌을 거쳐 최종 로스터 경쟁 단계까지 접근했다. 하지만 대학 레슬링과 WWE에서 통했던 신체적 우위가 NFL에서는 곧바로 성공을 보장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미식축구는 포지션별 전술 이해, 패턴 숙련도, 팀 단위의 호흡이 중요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레스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 중 하나였다. 그 또한 이 시기가 굉장히 힘들었으며 지금 그의 배와 가슴팍에 칼 문신이 있는 것도, 자기 목에 칼이 겨눠져 있다는걸 잊지 않으려고 문신을 했다고 한다. (근데 추후에 밝히기론, 맨정신에 한건 아니고 보드카 진탕 마시다가 정신차리고 보니까 문신이 있었다고 한다ㅋㅋ)
WWE의 정상에서 내려온 그는 새로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다음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NFL 도전의 실패는 그의 운동 인생을 끝내지 않았다. 오히려 레슬링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자신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는 무대를 찾게 만들었다.
3. UFC의 철창을 뒤흔든 육체적 재앙 — 4번째 경기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다



그는 2007년 K-1 다이너마이트 USA 대회에서 김민수와 프로 MMA 데뷔전을 치렀다. 사실 레스너의 원래 상대는 다름아닌 최홍만이었는데 최홍만이 뇌하수체 호르몬 검사에서 통과를 하지 못해 급하게 김민수로 상대가 바뀐 것이다. 레스너는 경기 초반부터 상대를 압박했고, 결국 1라운드 1분 9초 만에 파운딩으로 승리를 거뒀다. 단 한 경기만으로 세계 정상급 파이터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체격과 레슬링 능력이 MMA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08년 드디어 UFC에 입성한 레스너의 첫 상대는 프랭크 미어였다. 그러나 첫 UFC 경기부터 혹독한 현실을 마주했다. 미어는 레스너의 힘과 테이크다운 능력에 밀리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기회를 잡았으며, 레스너는 1라운드에 레그록 계열의 서브미션에 걸려 패했다. 레스너는 프로레슬링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UFC에서는 신참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유명세가 아니라 실제 MMA 기술과 경험이었다.
그는 다음 경기에서 프라이드 출신의 베테랑 파이터 히스 헤링을 판정으로 꺾으며 반등했고, 마침내 2008년 11월 UFC 91에서 헤비급 챔피언 랜디 커투어에게 도전했다. 당시 커투어는 풍부한 경험과 레슬링 기술을 갖춘 베테랑이었다. 레스너는 초반의 탐색전을 거쳐 커투어를 압박했고, 2라운드에 강력한 타격을 적중시킨 뒤 파운딩을 퍼부어 TKO 승리를 거둠으로써 프로 MMA 네 번째 경기 만에 UF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이렇게 단기간에 챔피언이 된 것은 레스너의 엄청난 이름빨과 인기로 인해 굉장한 특혜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회를 낚아채서 왕좌의 자리에 오른 것은 레스너의 재능이자 위엄이다.

2009년 UFC 100 1차 방어전에 나섰는데 상대는 다름아닌 그에게 첫 패배를 프랭크 미어었다. 하지만 레스너는 패배로부터 배우는 사나이였는데(실제로 아마추어 레슬링 전적에서도 데뷔전은 패배하였고 이후부터 연승행진을 달렸다고 한다.) 이번에는 상대의 서브미션을 경계하며 자신의 레슬링과 상위 포지션 장악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2라운드 TKO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를 확고히 함으로 괴물이 지능까지 갖추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각인시켰다. 이어 2010년 UFC 116에서는 셰인 카윈에게 초반 큰 위기를 겪었지만, 2라운드에 서브미션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는 레스너가 단순히 거대한 몸집으로 상대를 누르는 선수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레스너 입장에서도 카윈이 쉬운 상대는 아니었을 것이 본인과 피지컬이 비슷하고 카윈 또한 아마추어 레슬링 무대에서 NCAA 2부 우승자인데다 펀치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 인물이었고 실제로 1라운드에 말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레스너가 고전했었다.
아무튼 2차 방어까지 성공한 그였지만 전성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레스너는 게실염이라는 심각한 건강 문제로 고통받았고, 훈련과 경기 준비에 큰 영향을 받았다. 피지컬에 의지하는 스타일이었던 레스너에게 이는 치명적이었고 2010년 10월 UFC 121에서는 케인 벨라스케스에게 1라운드 TKO로 패해 타이틀을 잃었다. 이어 2011년에는 또 다른 피지컬 괴물이었던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패한 뒤 UFC에서 물러났다.
레스너의 MMA 전적은 5승 3패로 기록된다. 숫자만 보면 장기간 정상에 군림한 챔피언과는 거리가 있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짧은 활동 기간에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하고 두 차례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며, UFC의 대형 흥행 카드로도 자리 잡았다. 그의 이야기는 장기간의 기술적 완성도만이 스포츠 스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압도적인 레슬링, 예측하기 어려운 폭발력, 실제 승부에서 증명된 경쟁력이 그를 MMA 역사에서 독특한 존재로 만들었다.
4. 옥타곤을 떠나 다시 WWE로 — 언더테이커의 전설까지 무너뜨린 남자


복귀 후 레스너는 제한적인 출연만으로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는 존 시나, 트리플 H, 로만 레인즈 등 당대의 주요 스타들과 대립했다. 특히 2014년 섬머슬램에서 존 시나를 압도한 경기는 레스너를 WWE의 다른 선수들과 구별되는 파괴적인 존재로 각인시켰다. 경기에서 그는 독일식 수플렉스를 연속으로 구사하며 상대를 몰아붙였고, 이 장면은 훗날 그의 경기 스타일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리고 2014년 레슬매니아 30에서 역사적인 순간이 나왔다. 레스너는 언더테이커를 꺾으며 레슬매니아에서 이어지던 언더테이커의 21연승 행진을 끝냈다. 언더테이커의 연승 기록은 WWE에서 오랫동안 신성한 전설처럼 여겨졌다. 그 기록이 깨졌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고, 그 주인공이 레스너였다는 점은 그에게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부여했다.

그렇다고 WWE 복귀 이후의 삶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레스너는 출연 일정과 계약 조건에 따라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했으며, 2024년 빈스 맥마흔 관련 소송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한동안 WWE 프로그램에서 모습을 감췄다가 2025년 다시 활동을 이어갔다. 이러한 과정은 그의 커리어가 단순히 경기 결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레스너는 오랜 기간 WWE의 가장 강력한 흥행 카드 중 하나였다. 대학 레슬링에서 배운 기술, UFC에서 입증한 실전 경쟁력, WWE에서 구축한 캐릭터가 결합하면서 그는 어느 한 분야에만 갇히지 않는 독특한 스포츠 스타가 되었다.
5. 마지막 종소리, 그리고 괴물의 퇴장 — 2026년 은퇴 선언과 그 이후



그러나 2026년, 마침내 마지막 장이 찾아왔다. 2026년 레스너는 레슬매니아 42에서 오바 페미에게 패했고, 경기 후 링 중앙에 자신의 장갑과 부츠를 남기는 모습을 통해 은퇴를 암시했다. 하지만 곧바로 은퇴한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은퇴를 할 마음에 순간적인 반응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후 5월에 열린 WWE 클래시 인 이탈리아를 앞두고 다시 복귀해 재대결의 흐름을 만들었고, 8월 1일 섬머슬램에서 오바 페미와 헬 인 어 셀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다시 페미의 승리였다.
경기 후 레스너는 자신을 꺾은 오바 페미를 포옹하고, 그가 WWE의 미래라고 선언했다. 과거 언더테이커의 전설적인 연승 기록을 깨고, 존 시나와 로만 레인즈를 비롯한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했던 남자가 이제는 다음 세대의 스타를 인정하는 장면이었다. 레스너의 마지막 경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지배했던 무대를 새로운 세대에게 넘겨주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2026년 8월 4일, 레스너는 팻 맥아피의 방송에 출연해 프로레슬링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당시 49세였던 그는 링에서의 활동뿐 아니라 격투 스포츠 전반에서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자신을 응원해 온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앞으로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두 아들의 하키 활동을 지원하고, 딸 마이아의 2028년 올림픽 도전도 응원하며, 사냥과 야외 활동을 즐기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그의 근황을 정리하면, 2026년 10월 기준으로 브록 레스너는 은퇴를 공식 선언한 상태이며, 공개적으로 알려진 계획은 가족과 개인적인 삶에 집중하는 것이다. 운동선수로서 브록 레스너는 은퇴했고 새로운 스포츠에 도전하거나 UFC로 복귀하겠다는 공식 계획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의 모든 활동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며, 현재로서는 그가 직접 밝힌 은퇴 선언과 가족 중심의 계획을 기준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특히 지금은 개인 소유의 큰 농장을 운영하며 정육점을 운영하고 스테이크 가게도 내고 시즈닝 파우더 소스도 출시하는 등 사업가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전성기 시절 스테이크를 한 번에 2킬로까지 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레스너는 한때 NCAA 레슬링 챔피언이었고, WWE 최연소 챔피언이었으며, UFC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NFL에서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 실패가 다른 도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한 분야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운동선수로서의 인생 전체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지배했던 링을 떠났다. 한때 누구도 쉽게 쓰러뜨릴 수 없을 것 같았던 ‘괴물’도 언젠가는 장갑과 부츠를 내려놓는다. 하지만 NCAA의 매트에서 시작해 WWE의 링과 UFC의 옥타곤을 거쳐온 그의 여정은,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브록 레스너의 가장 큰 업적은 단지 세 개의 무대에 섰다는 데 있지 않다. 각 무대의 규칙과 요구가 달랐음에도 다시 배우고, 적응하고, 정상에 도전했다는 점에 있다. 그의 인생은 완벽한 승리의 연속이 아니었다. 패배와 건강 문제, 논란과 방황이 있었지만 그는 매번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어찌 보면 우리 삶도 쓰러져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고 도전하면 언젠가 성공할 수 있다는걸 몸소 보여준 인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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