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마크헌트 이외에 좋아하는 선수가 있는데, 바로 가브리엘 곤자가이다. 마크헌트를 좋아하고 프라이드의 향수에 젖어있는 필자가 가브리엘 곤자가를??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 선수를 처음 알게된 건 역시 그를 알리게 된 경기, 즉 ufc70에서 크로캅을 하이킥으로 잠재운 경기였다. 크로캅을 보려고 본 경기에서 의외의 선수를 알게된 셈이다. 당시엔 그저 놀랍고 황당한 채로 봤지만 이후의 행보를 보면 잘 하지만 최정상의 문턱에서 미끄러지고 사생활이나 인터뷰 보면 굉장히 순박하고 애처가+자식 바보인 말그대로 순박한 청년이라 정이 갔다.(하지만 불행하게도 2007년말, 그의 쌍둥이 딸 중 하나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곤자가 하면 하이킥이 떠올랐던 시절도 있지만 본래 베이스는 주짓수이다. 주짓떼로지만 타격 또한 매서운 헤비급 파이터인데 각각의 능력치를 보면 굉장히 강력하지만 뭔가 조합이 잘 안된 느낌이고 체력, 맷집 또한 나쁘다 할 순 없지만 결코 좋은 파이터도 아니었기에 미들커터의 느낌도 강했다.(이는 당시 같은 체급에서 뛰었던 칙 콩고도 마찬가지)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묵직한 압박, 거대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력, 그리고 세계 최정상급 킥복서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단 한 번의 하이킥. 가브리엘 곤자가는 헤비급 종합격투기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변을 만들어 낸 파이터 중 한 명이다.
그는 단순히 미르코 크로캅을 쓰러뜨린 선수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 프로 파이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UFC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으며, 정상에 도달하지 못한 뒤에도 오랫동안 옥타곤에서 살아남았다. 화려한 챔피언의 영광과는 다른, 묵묵하게 싸워 온 헤비급 파이터의 인생이 그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최정상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자 개인적으로 정이 가고 응원하는 파이터였기에 이번 글에 게재하고자 한다.
1. 주짓수 매트에서 시작된 여정 — 브라질 청년이 헤비급 파이터가 되기까지
가브리엘 곤자가는 1979년 5월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많은 브라질 출신의 파이터들과는 달리, 그가 생계를 위해 격투기 무대에 뛰어들긴 했지만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며 살진 않았다. 변호사 출신의 어머니와 수의사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어릴 적 부모님은 공부를 하길 바랐지만 그의 선택은 무술이었다. 그의 격투 인생을 이해하려면 종합격투기보다 먼저 브라질리언 주짓수(BJJ)를 살펴봐야 한다. 곤자가는 10대 시절 유도와 주짓수를 접하면서 격투기의 기초를 쌓았다. 알려진 이력에 따르면 그는 14세 무렵 유도를 시작했고, 15세에는 주짓수 수련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브라질은 주짓수가 단순한 호신술을 넘어 국제적인 경쟁 스포츠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곤자가는 이 환경 속에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유리한 자세를 확보하며, 관절기와 조르기로 경기를 끝내는 그래플링의 세계를 익혔다.



그의 주짓수 경력은 단순한 취미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곤자가는 세계브라질리언주짓수선수권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999년에는 브라운벨트 부문에서 세계선수권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블랙벨트로 승급한 뒤에도 슈퍼헤비급과 오픈클래스 등에서 성과를 냈다. 2000년 슈퍼헤비급, 2002년 오픈클래스에서 거둔 동메달은 그가 종합격투기에 뛰어들기 전부터 이미 수준 높은 그래플러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특히 체급이 무거운 선수일수록 체중과 근력을 앞세우기 쉽지만, 주짓수는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상대의 균형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가 중요하다. 곤자가는 이러한 기술적 기반을 바탕로 훗날 거대한 헤비급 상대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가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것은 자신의 그래플링 능력을 실제 싸움에 적용하는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였다. 2003년 브라질에서 프로 MMA 데뷔전을 치른 그는 초창기 지역 대회들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 초기에는 승리와 패배를 모두 경험했으며, 특히 훗날 UFC에서 함께 활동하게 되는 파브리시우 베우둠에게 패배한 기록도 있다. 이 시기의 곤자가는 아직 세계적인 스타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력한 주짓수와 헤비급다운 체격은 그가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주짓수 대회에서 쌓은 경험은 상대를 넘어뜨린 뒤 상위 포지션을 장악하는 능력으로 이어졌고, MMA에서 필요한 타격과 레슬링을 익히면서 점차 완성형 파이터로 발전했다.
곤자가의 초기 커리어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가 처음부터 압도적인 슈퍼스타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브라질의 격투기 무대에서 실전을 거듭하며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2005년 UFC에 입성하면서 인생의 무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주짓수 선수로서 쌓아 올린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의 MMA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지 시험받게 된 것이다. 훗날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전설적인 하이킥이었지만, 그 킥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10대 시절부터 쌓아 온 그래플링의 기초와 오랜 실전 경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2. 단 한 번의 하이킥으로 세계를 뒤집다 — 미르코 크로캅의 악몽이 된 UFC 70


곤자가의 이름을 격투기 역사에 영원히 새겨 넣은 경기는 2007년 4월 21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UFC 70이었다. 당시 UFC 헤비급에는 프라이드FC에서 활약하던 강자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미르코 크로캅은 특별한 존재였다. K-1에서 정상급 킥복서로 활약했고, 프라이드에서는 강력한 왼발 하이킥으로 수많은 상대를 쓰러뜨렸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이 바로 ‘오른쪽 다리는 병원, 왼쪽 다리는 묘지’라는 유명한 표현일 정도로, 왼발 하이킥은 공포의 상징이었다.
당시 곤자가는 크로캅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았다. 주짓수 실력은 뛰어났지만, 세계 최고의 헤비급 파이터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크로캅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곤자가에게는 자신을 증명할 기회였고, 크로캅에게는 UFC에서 헤비급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젖힐 기회였다. 두 선수의 대결은 단순한 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곤자가는 자신의 장기인 그래플링을 활용했다. 상대를 쓰러뜨리고 상위 포지션에서 압박하며 타격을 쏟아부었다. 크로캅은 익숙하지 않은 흐름에 놓였고, 곤자가는 세계적인 타격가를 상대로 자신이 왜 위험한 헤비급 선수인지를 증명했다. 그리고 1라운드 막바지, 격투기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이 탄생했다. 곤자가가 강력한 오른발 하이킥을 크로캅의 머리에 적중시킨 것이다. 크로캅은 그대로 쓰러졌고, 경기는 1라운드 4분 51초에 KO로 끝났다. 이 경기의 승자가 당시 챔피언이었던 랜디 커투어와 타이틀전을 치르기로 돼있었는데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랜디 커투어는 곤자가의 승리를 예상하였고 이는 적중하였다! 심지어 하이킥으로 크로캅을 잠재울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자 '랜디 도사'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이 승리가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곤자가가 크로캅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로 크로캅을 쓰러뜨렸다는 점이었다. 물론 크로캅의 모든 경기력이 하이킥 하나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오랫동안 갈고닦아 온 주특기를 상대가 역으로 성공시켰다는 사실은 전 세계 격투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UFC는 이 승리를 계기로 곤자가를 헤비급 타이틀 경쟁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그는 단숨에 무명에 가까운 도전자에서 챔피언을 위협하는 선수로 변신했다.
곤자가의 승리는 단순히 운이 따른 한 방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에 앞서 보여 준 테이크다운과 그라운드 압박은 크로캅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경기의 흐름을 흔들었다. 그 과정에서 타격을 경계해야 할 순간과 그래플링을 의식해야 할 순간이 겹쳤고, 곤자가는 그 틈을 결정적인 킥으로 마무리했다. 종합격투기에서 한 분야의 강점만으로는 정상에 오르기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서로 다른 기술을 연결하는 능력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 준 경기였다.
이 승리로 곤자가는 2007년 최고의 KO 장면 중 하나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UFC KO퍼레이드에 빠지지 않는 만들어 냄과 동시에 UFC 헤비급 타이틀 도전권까지 얻었다. 한때 주짓수 대회에서 메달을 따던 브라질 청년은 이제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무대에 서게 됐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는 일은 유명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에게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는 노련함과 레슬링, 경기 운영 능력을 겸비한 챔피언 랜디 커투어였다.
3. 챔피언의 벽과 거듭된 도전 — 랜디 커투어전부터 크로캅과의 재대결까지


2007년 8월 25일, 곤자가는 UFC 74에서 랜디 커투어와 UFC 헤비급 챔피언십을 놓고 맞붙었다. 당시 곤자가의 기세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커투어는 40대 중반에 접어든 노장이었기에, 도박사들의 배당도 곤자가가 우세한거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커투어는 단순히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 아니었다. 뛰어난 레슬링과 클린치 운영,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거리 조절 능력을 앞세워 거대한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해 온 챔피언이었다. 곤자가가 크로캅을 무너뜨리면서 타이틀 도전권을 얻었지만, 챔피언을 쓰러뜨리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과제였다.
경기 초반 곤자가는 강력한 킥으로 커투어에게 위협을 가했다. 실제로 커투어는 곤자가의 킥을 막는 과정에서 팔에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UFC 관련 기록에서 소개된다. 하지만 커투어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거리를 좁히고 클린치에서 압박하며 중간중간 더티 복싱을 통해 안그래도 체력이 안좋은 곤자가를 힘들게 하였고 마음껏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을 줄였다. 곤자가가 가진 주짓수와 파괴력은 여전히 위협적이었지만, 커투어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상대의 강점을 제한했다. 결국 3라운드 1분 37초, 커투어가 타격으로 곤자가를 몰아붙이며 TKO 승리를 거뒀다. 곤자가는 생애 첫 UFC 타이틀 도전에서 패배했다.


타이틀전 패배 이후 곤자가는 파브리시오 베우둠이라는 또다른 주짓수 괴물을 만났다. 사실 이 둘은 2003년 브라질 mma 대회였던 정글파이트에서 붙었는데 당시에 베우둠이 tko승을 거두었기에 곤자가 입장에선 복수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베우둠 전을 앞두고 곤자가의 쌍둥이 딸 중 하나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일어나 그는 다시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고 이는 베우둠과의 2차전에서도 패배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 졌다고 할 순 없지만 멘탈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2연패를 하게 된 곤자가였지만 그는 헤비급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했다. 저스틴 맥컬리에게는 키무라로 승리했고, 조시 헨드릭스도 1라운드 KO로 제압했다. 반면 셰인 카윈, 주니어 도스 산토스 같은 강자들에게는 패배하며 정상권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경험했다. 곤자가의 커리어는 이처럼 극적인 승리와 뼈아픈 패배가 교차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2010년대에 들어서도 곤자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UFC에서 잠시 벗어났다가 복귀했고, 데이브 허먼과 숀 조던 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다시 경쟁력을 보여 줬다. 하지만 스티페 미오치치, 맷 미트리온 같은 선수들에게 패하면서 젊고 빠른 헤비급 타격가들을 상대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거대한 체격과 주짓수는 여전히 강점이었지만, 경기 내내 상대의 압박을 견디고 변화하는 흐름에 대응해야 하는 종합격투기의 특성상 선수의 신체적 조건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2015년 4월 11일, 곤자가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상대와 다시 만났다. 장소는 폴란드 크라쿠프, 대회는 UFC 파이트 나이트 64였다. 상대는 바로 미르코 크로캅이었다. 첫 대결에서 크로캅을 상대로 충격적인 KO를 거둔 지 약 8년 만에 성사된 재대결이었다. 크로캅에게는 과거의 치욕을 씻을 기회였고, 곤자가에게는 자신이 거둔 승리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다시 증명할 기회였다.
경기 초반 곤자가는 좋은 흐름을 보였고, 첫 두 라운드에서는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 줬다. 그러나 3라운드에 들어서자 크로캅이 팔꿈치 공격으로 흐름을 바꾸었다. 곤자가가 타격을 허용하며 흔들렸고, 크로캅은 이어지는 공격으로 경기를 끝냈다. 공식 결과는 3라운드 3분 30초 TKO였다. 곤자가는 자신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 상대에게 패배하며, 8년 전과는 정반대의 결말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재대결은 곤자가의 커리어를 상징하는 경기이기도 하다. 그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뒤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야 했고, 당시 상대였던 크로캅 역시 그를 분석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종합격투기에서 한 번의 승리는 영원한 우위를 보장하지 않 곤자가의 이야기는 바로 그 냉혹한 현실을 보여 준다. 정상에 오르는 순간만큼이나, 패배 이후에도 링과 옥타곤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파이터의 인생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4. 옥타곤을 떠난 거인의 두 번째 인생 — 은퇴, 도장, 그리고 주짓수로 돌아가다


곤자가의 선수 생활은 한순간에 끝난 것이 아니었다. 2016년 4월, 그는 UFC 파이트 나이트 86에서 데릭 루이스와 맞붙었다. 원래 상대는 루슬란 마고메도프였지만, 상대의 부상으로 현재까지 UFC 헤비급에서 활약중인 데릭 '블랙비스트' 루이스가 대체 선수로 투입됐다. 당시 루이스는 떠오르는 신예였고 곤자가는 저물어가는 베테랑 파이터였는데 곤자가가 상위 포지션을 장악하면서 유리하게 이끌고 갔지만 1라운드 4분 48초에 펀치를 허용하며 KO 패배를 당했다. 이 경기로 루이스는 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하였고 과거 크로캅이라는 스타를 잡고 스타가 됐던 곤자가는 이 경기가 그의 UFC 마지막 경기로 남았다.
그해 9월, 곤자가는 MMA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완전히 모든 격투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2018년 러시아에서 효도르의 동생인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를 상대했으나, 3라운드 tko패배를 당했으며 그는 인터뷰에서 큰 금전적 조건이 제시되지 않는 한 MMA로 돌아갈 계획이 없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주짓수 체육관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오랫동안 프로 파이터로 활동하며 치러야 했던 혹독한 훈련과 부상 위험, 경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은 은퇴를 고민하게 만든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무조건 MMA 무대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곤자가가 선택한 두 번째 인생의 중심에는 주짓수가 있었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체육관인 스퀘어드 브라질리언 주짓수(Squared BJJ)를 운영하고 지도자로 활동해 왔다. UFC에서 싸우던 시절에도 주짓수 교육과 수련을 이어 갔으며, 선수 생활에서 물러난 뒤에는 자신이 수십 년간 쌓아 온 기술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데 집중했다. 자신이 직접 상대를 제압하는 것과 제자를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지만, 주짓수라는 종목에 대한 애정은 두 역할을 연결해 주었다.
그의 주짓수 경력은 MMA 은퇴와 함께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 냈다. 체육관의 공식 소개에 따르면 곤자가는 브라질리언 주짓수 6단 블랙벨트이며, 2023년 세계 마스터 브라질리언 주짓수 선수권대회와 2024년 유도 마스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 경력을 쌓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단지 과거의 유명 파이터로 도장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쌓은 실전 경험과 오랜 주짓수 수련을 바탕으로, 지도자이자 마스터스급 경쟁자로서도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6년 10월 현재 확인되는 근황을 보면, 곤자가는 현역 UFC 파이터가 아니라 주짓수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이 더 뚜렷하다. 그의 체육관 공식 소개는 그를 전 UFC 헤비급 선수이자 브라질리언 주짓수 지도자로 소개하고 있으며, 높은 단수의 블랙벨트와 세계대회 우승 경력을 강조한다. 다만 최근 일상이나 향후 경기 계획에 관한 세부적인 소식은 공개 자료만으로 모두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가 현재 어떤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MMA 무대에서 물러나 주짓수 교육과 수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정리하는 편이 정확하다.
곤자가의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순간은 크로캅을 쓰러뜨린 하이킥이었다. 그러나 그의 커리어를 그 한 장면만으로 평가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그는 세계선수권에서 성과를 거둔 주짓수 선수였고, UFC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한 파이터였으며, 패배와 복귀를 반복하면서도 오랫동안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길을 선택했다.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모든 선수의 이야기가 실패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곤자가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겼고, 은퇴 이후에도 자신이 사랑한 격투기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한 번의 KO가 만든 영광뿐 아니라, 오랜 수련과 경험이 만들어 내는 두 번째 인생의 가치까지 보여 준다.
'mma 인물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로이 넬슨 — 뱃살 아래 숨겨진 괴물의 주먹, 헤비급의 상식을 박살 낸 최후의 진흙탕 파이터 (0) | 2026.10.14 |
|---|---|
| 알리스타 오브레임 — 괴물의 탄생과 추락, 그리고 다시 시작된 전설의 다음 라운드 (0) | 2026.10.13 |
| 수박밭의 소년은 헤비급 왕이 되었다 — 브라운 프라이드, 케인 벨라스케 (0) | 2026.10.12 |
| 브록 레스너, 인간의 한계를 찢어버린 괴물 — NCAA의 왕좌에서 UFC의 옥타곤, WWE의 마지막 퇴장까지 (1) | 2026.10.12 |
| 전장의 그림자는 링 위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 스페츠나츠의 전사,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의 불멸을 향한 투쟁 (0) | 2026.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