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마크헌트 못지않게 좋아하는 파이터가 바로 댄 '헨도' 헨더슨이다. 헌트나 헨더슨이나 70년대생 출신의 50대 아재들이고 현재는 은퇴한 양반들이라 격투기를 접한 지 얼마 안되신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고 뭔가 필자가 라떼 팔이나 하고 있네...싶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한다는걸 반박하진 못하겠다ㅠㅠ필자 또한 불혹을 코앞에 둔 입장이니...하지만 블로그 주제도 mma 파이터들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선수들 위주로 하고 실제로 현역 파이터들 중에서도 좋아하는 선수들이 매우 많고 이들도 추후 다룰 것이다.
댄 헨더슨 하면 필자는 삼국지의 황충이 떠오른다. 사실 나머지 오호대장군의 맴버인 관우, 장비, 마초, 조운에 비해 임팩트도 강하지 않고 나이도 많아서 눈에 덜 띄는 장수이지만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끝까지 활을 쏘며 본인의 임무를 다 하는게 헨더슨 또한 활약하던 시절, 타 선수들에 비해 데뷔도 늦었고 나이 또한 많은 축에 속했지만 화끈함과 상대가 누구든 맞춘다는 투지는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후배 파이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TRT의 선구자 격이 되는 파이터라 이 점에 있어선 논란의 여지가 있고 실제로 TRT가 금지되자마자 경기력이 급하강하였다...)
댄 헨더슨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거대한 오른손이 상대의 턱을 향해 폭발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를 단순히 ‘강력한 오른손을 가진 파이터’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헨더슨은 미국 레슬링을 대표했던 두 차례 올림피언이었고, 일본 RINGS와 PRIDE에서 정상에 올랐으며, Strikeforce에서도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 선수였다. 특히 PRIDE에서는 웰터급과 미들급 챔피언을 동시에 보유한 최초의 선수라는 독특한 기록도 남겼다. 이제 이런 선수를 파헤쳐 보도록 하자.
1. 목장 소년에서 올림픽 레슬러까지 — ‘Hendo’의 뿌리는 레슬링이었다

댄 헨더슨의 출발점은 화려한 격투기 체육관이 아니었다. 그는 1970년 8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우니(Downey)에서 태어났고, 이후 애플 밸리(Apple Valley)의 목장에서 성장했다. 2026년 현재 그의 나이는 56세다. 최근 인터뷰에서도 헨더슨은 어린 시절 목장에서 말, 양, 염소, 토끼, 닭, 칠면조 등을 돌보며 자랐다고 회상했다. 도시에서 운동에만 집중하는 환경과는 상당히 달랐던 셈이다.
그런 환경에서 헨더슨의 아버지 빌 헨더슨은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다. 아버지 역시 레슬링을 했고 학교 교사였으며, 헨더슨이 불과 5살이었을 때 형 톰과 함께 레슬링을 시작하도록 이끌었다. 훗날 아버지는 직접 아들의 코치 역할까지 맡았다. 헨더슨의 어린 시절은 말 그대로 가족과 레슬링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던 생활이었다. 1992년 《Los Angeles Times》 역시 헨더슨의 레슬링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 빌과 코치 밥 앤더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헨더슨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강한 경쟁심을 보여줬다. 1987년 캘리포니아 주 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당시 그의 팀은 주 챔피언에 올랐다. 1988년에는 주 대회에서 5위를 기록한 뒤 주니어 전국대회에서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모두 정상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대학 진학 이후에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에서 레슬링을 이어갔다. 특히 헨더슨은 자유형보다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mma 밑거름" 카테고리에서 레슬링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했지만 그레코로만형은 허리 아래를 잡거나 다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제한되기 때문에 상체의 클린치와 몸통 컨트롤, 상대를 들어 올리고 던지는 능력이 중요하다. 훗날 MMA에서 보여준 헨더슨의 특유의 압박형 클린치와 테이크다운 방어, 상대를 케이지에 몰아붙이는 능력은 바로 이 시절의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1991년, 1993년, 1994년 대학 그레코로만형 전국 챔피언이 됐고, 성인 무대에서도 1993년, 1994년, 1997년 미국 그레코로만형 전국 챔피언에 올랐다. 국제대회에서도 팬아메리칸 대회 메달 등을 획득하면서 미국을 대표할 만한 선수로 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헨더슨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미국 대표팀에 연속으로 선발됐다.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올림픽 무대에 두 번이나 출전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레슬링 경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까지만 해도 헨더슨에게 MMA는 주된 목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의 진짜 꿈은 세 번째 올림픽 출전이었다. 그러나 2000년 올림픽 대표 선발에 실패하고 2001년 세계선수권 대표 선발전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면서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레슬링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경험이 이제 MMA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2. “레슬링을 계속하기 위한 돈벌이였는데…” — 브라질에서 시작된 MMA, 그리고 RINGS의 전설


헨더슨이 MMA에 처음 발을 들인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돈을 벌어 레슬링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친구이자 팀 동료였던 랜디 커투어가 MMA 대회에 참가하면서 헨더슨에게도 함께 출전해보자고 권했고, 1997년 브라질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당시 헨더슨에게 MMA는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레슬링을 중심에 두고 있었고, MMA는 그 목표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당시 헨더슨에게 MMA는 그저 알바 정도였고, 훗날 인터뷰에서도 MMA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레슬러 말고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7년 브라질 오픈에서 헨더슨은 한밤중에 두 경기를 치르는 토너먼트 형식에 참가했다. 그는 크레지오 데 소우자와 에릭 스미스를 차례로 꺾고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레슬링 선수였던 헨더슨에게 하루에 여러 경기를 치르는 토너먼트 방식은 오히려 익숙한 환경이었다. 다만 MMA의 타격과 서브미션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헨더슨은 당시 제대로 스파링을 해본 경험조차 많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1998년에는 UFC 17에 출전했는데 사실 헨더슨의 UFC 데뷔 무대는 프라이드 이후가 아닌 20세기의 일이다! 여기서 카를로스 뉴턴을 연달아 꺾으며 UFC 미들급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Newton과의 결승에서는 턱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경기를 끝까지 치렀다. 이 시점까지도 헨더슨은 자신이 장차 세계적인 MMA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MMA 전적은 출발부터 4승 무패였지만, 여전히 레슬링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1999년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일본의 RINGS 무대에서 헨더슨은 자신의 이름을 세계 MMA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특히 2000년 열린 RINGS King of Kings 토너먼트는 그의 커리어에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헨더슨은 자신보다 훨씬 큰 선수들과 맞붙었는데, 무려 길버트 아이블,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헤나토 소브할을 같은 날 상대했다. 세 경기 모두 판정승으로 통과하면서 토너먼트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는 헨더슨의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준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화려한 기술을 연속으로 구사하기보다 상대에게 달라붙어 압박하고, 레슬링으로 균형을 무너뜨린 뒤 강한 펀치를 집어넣는 방식으로 싸웠다. 체격이 더 큰 상대에게도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과 체력, 그리고 한 번 기회를 잡으면 경기의 흐름을 뒤집어버리는 파괴력이 그의 무기가 됐다.
그리고 일본에서 성장한 헨더슨은 자연스럽게 프라이드로 무대로 이동한다. 2000년대 초반 PRIDE는 세계 최고의 MMA 선수들이 모이던 무대였고, 헨더슨은 이곳에서 반다레이 실바, 노게이라 형제, 미사키 카즈오, 히카르도 아로나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맞붙었다.
2005년에는 프라이드 웰터급 그랑프리에 참가해 초난 료, 무릴로 부스타만테를 꺾고 우승했다. 당시 프라이드의 웰터급은 현재 기준으로는 약 83kg에 해당하는 체급이었으며, 헨더슨은 이 대회 우승으로 웰터급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2007년 PRIDE 33에서 오랜 라이벌이자 본인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반다레이 실바를 KO로 꺾으면서 미들급 챔피언까지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헨더슨은 PRIDE의 두 체급 챔피언 벨트를 동시에 보유한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가 됐다.
이 시기 헨더슨은 단순한 레슬러가 아니었다. 레슬링을 기반으로 MMA에 적응한 뒤 타격을 발전시켰고, 일본 무대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싸우며 완성형 MMA 파이터로 변모했다. 훗날 UFC에 복귀했을 때 팬들이 보게 된 ‘Hendo’는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선수였다.
3. PRIDE의 왕에서 UFC의 노장까지 — 그리고 ‘H-Bomb’이 만든 불멸의 장면



프라이드에서 두 체급을 동시에 제패한 헨더슨이 2007년 UFC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과거의 신인이 아니었다. 1998년 UFC 17에서 싸운 이후 무려 9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사이 헨더슨은 RINGS와 프라이드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하며 최고의 경험을 쌓은 상태였다. UFC에 돌아온 그의 첫 상대는 당시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었던 퀸튼 ‘Rampage’ 잭슨이었다. 헨더슨은 판정패를 당했지만, 이후 UFC에서 다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2008년에는 앤더슨 실바에게 UFC 미들급 타이틀을 걸고 도전했지만 서브미션으로 패했다. 이후 헨더슨은 2009년 UFC 100에서는 마이클 비스핑을 만났다. 당시 두 선수는 《The Ultimate Fighter 9》에서 각각 미국팀과 영국팀의 코치를 맡았고, 결국 코치끼리 직접 싸우게 됐다. 헨더슨은 2라운드에 특유의 오른손을 적중시켜 비스핑을 KO시켰다. 바로 이 장면이 ‘H-Bomb’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 팬들에게 각인시킨 대표적인 장면이다. 마지막 사진에서의 저 KO시키려고 날아서 파운딩치는 저 모습을 본인의 의류 브랜드 로고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H-Bomb은 정확히 무엇인가?
H-Bomb은 단순히 ‘강한 오른손’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헨더슨의 공격 시스템 전체를 이해해야 진짜 위력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오른손은 오버핸드 라이트에 가까웠다. 일반적인 스트레이트처럼 직선으로 뻗기보다 팔을 크게 휘어 상대의 가드 위나 옆을 돌아 턱을 노린다.
여기에 헨더슨의 레슬링 위협이 결합됐다. 상대는 헨더슨이 레벨을 낮추며 들어오면 테이크다운을 의식해야 했다. 반대로 펀치를 의식하면 헨더슨이 클린치와 레슬링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양쪽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서 H-Bomb이 날아왔다. UFC 역시 헨더슨의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그의 강력한 레슬링과 오른손을 함께 강조했고, 헨더슨 본인 역시 상대에 따라 레슬링과 타격을 섞어 경기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UFC 100에서 비스핑에게 적중한 장면은 H-Bomb의 교과서와 같았다. 왼발의 낮은 킥으로 상대의 시선을 흔든 뒤 오른손 오버핸드를 폭발시키는 패턴이었다. 단순한 힘만으로 만들어진 KO가 아니라 거리 조절, 페인트, 레슬링 위협, 체중 이동, 타이밍이 모두 결합된 공격이었다.
하지만 헨더슨의 커리어에서 가장 극적인 시기는 2010~2011년이었다. Strikeforce에서 제이크 쉴즈에게 판정패를 당한 뒤 헤나토 소브할을 KO로 꺾었고, 2011년에는 하파엘 페이자오를 TKO로 잡으며 Strikeforce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전 프라이드의 상징과도 같았던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맞붙었다. 헨더슨은 헤비급으로 올라가 한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결국 1라운드 TKO승을 거뒀다. 이 승리로 댄 헨더슨과 갈등이 있던 데이나 화이트는 앙금을 풀고 다시 한 번 41세의 노장에게 손을 내밀었고, 헨더슨은 금의환향하며 UFC에 두 번째 컴백을 하였다.
UFC로 돌아온 헨더슨은 2011년 UFC 139에서 마우리시오 ‘쇼군’ 후아와 역사적인 혈전을 벌였다. 41세의 헨더슨과 쇼군은 5라운드 내내 서로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입혔고, 헨더슨은 초반 H-Bomb으로 쇼군을 거의 끝낼 뻔했다. 하지만 쇼군은 끝까지 버텼고, 두 선수는 25분 동안 엄청난 공방을 펼쳤다. UFC는 이 경기를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경기로 선정했다.
이후 헨더슨은 2014년 쇼군과 다시 만나 이번에는 3라운드 TKO승을 거뒀고, 2015년에는 44세의 나이에 팀 보에치를 단 28초 만에 H-Bomb으로 무너뜨렸다. 2016년에는 헥터 롬바드까지 KO로 잡으며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몸소 보여줬다.
4. 46세의 마지막 싸움, 그리고 은퇴 후의 ‘또 다른 인생’



헨더슨의 마지막 경기는 그의 커리어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경기였다. 2016년 10월 8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UFC 204에서 헨더슨은 자신이 이미 한 차례 KO시켰던 마이클 비스핑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비스핑은 UFC 미들급 챔피언이었고, 헨더슨은 46세의 베테랑이었다. 헨더슨에게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끝내 손에 넣지 못했던 UFC 챔피언 벨트를 차지할 마지막 기회였다.
경기는 5라운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헨더슨은 다시 한 번 H-Bomb을 적중시켰다.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비스핑이 크게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오른손이 들어갔다. 하지만 비스핑은 살아남았고, 이후 5라운드까지 버티며 판정승을 가져갔다. 판정 결과는 48-47, 48-47, 49-46으로 비스핑의 승리였다. 헨더슨은 UFC 챔피언 벨트를 끝내 차지하지 못했지만, 그날 경기 직후 자신이 마지막으로 옥타곤에 올랐다는 사실을 직접 밝혔다.
그렇게 헨더슨의 19년에 가까운 프로 MMA 커리어가 막을 내렸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전적은 32승 15패이며, UFC와 프라이드,스트라이크포스 등에서 수많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싸웠다. 그의 경력에서 특이한 부분은 챔피언 벨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커리어라는 것이다. UFC 챔피언은 되지 못했지만 프라이드에서는 두 체급 챔피언이 됐고, 스트라이크포스 라이트헤비급 챔피언도 차지했다. RINGS King of Kings 토너먼트와 UFC 17 토너먼트, PRIDE 2005 웰터급 그랑프리까지 우승했다.
특히 헨더슨을 다른 선수들과 구분하는 것은 스타일의 일관성이었다. MMA가 기술적으로는 발전하여 거리싸움, 수싸움 등에서 이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헨더슨은 "변화보단 잘 하던걸 더 갈고 닦자."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초지일관 레슬링을 기반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클린치에서 힘을 쓰며, 상대가 테이크다운을 의식하는 순간 오른손을 폭발시켰다. 화려한 킥이나 복잡한 조합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영역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 결과 그의 오른손은 단순한 펀치가 아니라 ‘H-Bomb’이라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렇다면 은퇴 이후의 헨더슨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26년 8월 공개된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헨더슨은 이제 선수로서의 경쟁보다는 사업, Hendo Foundation 활동, 사냥과 낚시 같은 야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격투기 선수로서의 경험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쌓은 경험을 다음 세대와 사회에 돌려주는 방향으로 삶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특히 최근의 헨더슨을 보면 젊은 시절의 ‘싸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 보인다. 어린 시절 목장에서 동물들을 돌보며 자랐던 그는 지금도 사냥과 낚시 등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과거에는 레슬링 매트와 링, 옥타곤이 삶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가족과 사업, 야외 활동 그리고 자신의 재단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댄 헨더슨의 일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올림픽을 꿈꾸던 레슬러가 MMA 역사상 가장 강렬한 오른손을 가진 전설이 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UFC 챔피언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헨더슨의 이야기를 약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가진 레슬링이라는 무기를 MMA에 맞게 변화시키고, 부족했던 타격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며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맞섰다. 그리고 46세까지도 옥타곤에 올라 H-Bomb을 휘둘렀다.
한때 레슬링을 계속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시작했던 MMA가 결국 그의 평생을 대표하는 직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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