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A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나라 중 하나가 브라질인데, 한 시대 브라질을 대표하던 파이터가 바로 ‘The Axe Murderer(도끼 살인마)’ 반다레이 실바다. 그는 단순히 강한 파이터였던 것이 아니다. 상대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맞으면서도 웃고, 쓰러질 때까지 난타전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효도르와 더불어 프라이드를 상징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됐다. 특히 전성기 시절의 실바는 프라이드 미들급 챔피언 장기 집권, 사쿠라바와의 라이벌리, 퀸튼 ‘램페이지’ 잭슨과의 악연, 그리고 쇼군 마우리시오 후아와의 끈끈한 우정을 모두 만들어내며 MMA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실바의 프로 전적은 51경기 35승 14패 1무 1무효로, 22년에 걸친 프로 MMA 경력을 남겼다. PRIDE에서는 22승을 거두며 최다승 기록을 보유했고, 15번의 KO 승리와 20경기 무패 행진, 1,939일에 달하는 미들급 챔피언 재위 기간 등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저번에 프라이드 최고의 헤비급 선수였던 효도르를 알아봤다면 이번엔 최고의 미들급 선수였던 반다레이 실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1. 브라질의 거친 체육관에서 태어난 ‘도끼 살인마’

반다레이 실바의 이야기는 브라질 남부의 도시 쿠리치바에서 시작된다. 훗날 세계적인 MMA 스타가 되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격투 스포츠에 관심을 보였고, 성장하면서 브라질의 전설적인 격투기 명문 슈트복세(Chute Boxe)에 몸담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무에타이와 킥복싱을 중심으로 자신의 타격 능력을 발전시켰다. 이후 브라질 군에 복무하면서 브라질리언 주짓수 역시 익혔는데,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그의 거친 타격과 그래플링을 결합한 MMA 스타일의 토대가 됐다.
실바가 성장한 슈트복세는 단순한 격투기 체육관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훗날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선수들이 함께 땀을 흘리고 있었다. 반다레이 실바를 중심으로 마우리시오 ‘쇼군’ 후아, 무릴로 ‘닌자’ 후아, 안데르송 실바, 페드로 히조 등 수많은 강자들이 모여 있었고, 훈련 자체가 실제 경기보다 더 혹독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쇼군 역시 당시 슈트복세의 스파링이 실제 경기보다 더 힘들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실바는 1996년 11월 1일 브라질 베일 투두 6에서 프로 MMA 데뷔전을 치렀고, 첫 경기부터 1라운드 KO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UFC에도 진출했지만 초창기에는 순탄하지 않았다. 1998년 UFC 브라질 대회에서 훗날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 되는 비토 벨포트에게 44초 만에 패했고, 이후 UFC 25에서는 당시 챔피언이었던 티토 오티즈에게 판정으로 패했다.
하지만 이것은 실바에게 좌절의 끝이 아니라 진짜 전성기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그가 일본 PRIDE FC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2001년 PRIDE 17에서 일본의 스타이자 ‘그레이시 헌터’로 불리던 가즈시 사쿠라바를 무너뜨리고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실바는 무려 1,939일 동안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이는 PRIDE 역사상 가장 긴 타이틀 집권이었다. 이때부터 ‘반다레이 실바’라는 이름은 단순한 파이터가 아니라 공포 그 자체가 됐다.
2. 피할 생각이 없었던 남자 ― 프라이드 전성기와 ‘도끼 살인마’의 탄생


반다레이 실바의 전성기를 설명하려면 가장 먼저 ‘싸움을 피하지 않는 파이터’라는 말을 떠올려야 한다. 그의 경기에는 복잡한 전술적 수싸움보다 훨씬 본능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상대가 공격하면 물러서기보다 오히려 앞으로 들어갔고, 타격을 허용해도 다시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특히 클린치에서 상대를 로프나 케이지 쪽으로 몰아넣은 뒤 무에타이식 니킥을 연속으로 꽂는 공격은 실바의 상징과도 같았다.
프라이드의 룰 아래에서는 다운된 상대에게 사커킥과 스탬프가 허용되기도 했는데, 실바는 이런 공격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UFC는 그의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니킥으로 상대를 쓰러뜨린 뒤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으며 프라이드에서는 사커킥과 스탬프가 마무리 수단이 되곤 했다고 평가했다. UFC로 돌아온 이후에는 룰에 맞춰 그 역할을 그라운드 앤 파운드로 바꾸었으나, 프라이드에서의 사커킥과 스탬프를 이용한 광폭함은 줄어들었다.
그를 잘 알린 대표적인 경기는 사쿠라바와의 경기였다. 2001년 첫 대결에서 실바는 사쿠라바를 일방적으로 무너뜨렸다. 당시 사쿠라바는 그레이시 가문의 여러 파이터들을 꺾으며 일본 MMA를 대표하는 스타였지만, 실바와의 첫 경기에서는 이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압도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두 사람은 이후 다시 맞붙었고, 실바는 사쿠라바와의 대결에서 계속 우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실바의 전설에 또 하나의 장면이 추가된다. PRIDE 미들급 그랑프리에서 실바는 사쿠라바, 유도 강자 히데히코 요시다, 그리고 퀸튼 ‘램페이지’ 잭슨을 차례로 상대했다. 특히 결승에서 잭슨을 무릎 공격으로 무너뜨리며 우승했고, PRIDE 챔피언과 그랑프리를 모두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04년에는 잭슨과 다시 만났다. 두 번째 경기는 첫 번째 경기보다 훨씬 강렬했다. 잭슨은 실바에 대한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냈고, 두 선수 사이의 긴장감은 경기 전부터 극에 달했다. 결국 실바는 다시 한번 잭슨을 KO시키며 라이벌 관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갔다. 이 KO는 이후 Sports Illustrated가 선정한 2004년 ‘Knockout of the Year’와 2004년대 최고의 KO 중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강렬했다. 그 시절의 실바는 정말 무서운 선수였다. PRIDE 역사에서 22승, 15KO, 18번의 다운, 720회의 유효타 기록을 남겼으며 20경기 연속 무패라는 놀라운 행진도 이어갔다.
3. 숙적 램페이지와 친구 쇼군 ― 싸움에서는 적, 체육관에서는 형제

반다레이 실바의 파이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둘이 있는데 하나는 퀸튼 ‘램페이지’ 잭슨이고 다른 하난 마우리시오 ‘쇼군’ 후아이다. 먼저 잭슨과 실바는 MMA 역사에 남을 대표적인 라이벌이었다. 두 선수는 2003년 PRIDE 미들급 그랑프리 결승에서 처음 만났다. 잭슨은 이미 뛰어난 레슬링과 엄청난 파워를 갖춘 신성이었고, 실바는 당시 체급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잭슨은 초반 실바를 테이크다운시키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실바는 결국 클린치에서 무서운 무릎 공격을 퍼부으며 승리를 가져갔다.
그리고 2004년 재대결은 더욱 악명 높은 난타전이 됐다. 두 선수 사이에는 경기 외적인 감정까지 쌓여 있었다. 잭슨의 발언에 실바가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단순한 스포츠 경쟁을 넘어선 감정싸움으로 발전했고, 결국 실바는 다시 KO승을 거뒀다. 두 사람의 프라이드 시절 두 경기는 지금까지도 프라이드를 대표하는 라이벌전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후 UFC와 벨라토르에서 두 경기를 더 맞붙었는데 두 번 모두 퀸튼잭슨이 KO승을 거둠으로써, 두 파이터의 상대전적은 2승2패로 균형을 이루게 되었고 마지막 경기를 한 시점, 두 파이터 모두 20대 시절의 패기와 독기있는 눈빛과 살기 대신 훈훈한 40대 아재가 되어 웃으면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실바에게는 전혀 다른 관계의 파이터도 있었다. 바로 마우리시오 ‘쇼군’ 후아다. 쇼군은 슈트복세에서 실바와 함께 성장한 후배였다. 당시 젊은 쇼군에게 실바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일종의 우상이었다. 쇼군은 훗날 자신이 MMA를 시작했을 때부터 실바와 그의 형 무릴로 ‘닌자’ 후아를 보며 꿈을 키웠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팀 동료를 넘어섰다. 실바는 쇼군을 동생처럼 생각했고, 쇼군 역시 실바를 특별한 형처럼 여겼다. 쇼군이 은퇴할 때 실바는 그를 자신의 ‘형제’라고 부르며 그의 경력을 극찬하기도 했다. 실바는 쇼군을 오랫동안 체육관에서 지켜본 최고의 파이터 중 한 명으로 평가하면서, 그가 프라이드 그랑프리를 우승했던 순간과 노게이라와의 명승부를 자신의 특별한 기억으로 꼽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쇼군의 반려견이 새끼를 낳자 실바가 한 마리를 원했고, 이후 강아지 값을 둘러싸고 두 사람이 장난처럼 논쟁을 벌였다. 결국 둘은 체육관에서 16온스 글러브를 끼고 실제로 싸워 승자가 강아지 문제를 결정하기로 했다. 실바의 회상에 따르면 두 사람은 매우 거칠게 싸웠고 경기는 1라운드에 끝났다고 한다.
이 일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실바라는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친구에게는 누구보다 의리 있고, 싸움이 시작되면 친구와도 봐주지 않는 사람. 실제로 쇼군이 마크 콜먼과 경기하다 부상을 당했던 PRIDE 31에서는 실바가 링 안으로 뛰어들어 콜먼에게 달려들 정도로 격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실바는 친구를 공격하는 상황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반다레이 실바라는 인간의 매력이었다.
4. 몰락, 부활 그리고 전설로 남은 은퇴 ― 아직도 꺼지지 않은 ‘도끼 살인마’의 불꽃


영원할 것 같았던 전성기도 결국 끝이 찾아왔다. PRIDE에서 최정상에 있던 실바는 2005년 그랑프리에서 리카르도 아로나에게 판정패하며 긴 무패 행진에 제동이 걸렸고, 이후 체력과 반사신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예전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실바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프라이드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실바는 2007년 UFC로 돌아왔다. 복귀전 상대는 또 다른 전설 척 리델이었다. 실바는 치열한 난타전을 펼쳤지만 판정패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이 경기는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경기’로 선정될 정도로 큰 인상을 남겼다. 필자 또한 이 경기를 라이브로 봤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경기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아니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워낙 화끈한 불빠따 상남자 둘이 만났으니 재밌을 수 밖에...
이후 실바는 UFC에서 승패를 반복했다. 특히 키스 자르딘을 KO로 쓰러뜨린 장면은 그의 부활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2010년에는 마이클 비스핑과 맞붙어 판정승을 거두면서 다시 정상권을 노렸고, 2011년에는 UFC 92에서 마침내 오랜 라이벌 퀸튼 잭슨과 UFC 무대에서 세 번째 대결을 펼쳤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번에는 잭슨이 1라운드 KO로 승리하며 두 사람의 라이벌리에서 복수에 성공했으며 이후 UFC132에선 또 다른 핵주먹이자 미들급 맷집왕인 크리스리벤과 난타전을 주고 받다가 32초만에 실신 KO패를 당하면서 실바도 이제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반다레이 실바는 역시 도끼사냥꾼이었다. 2013년 브라이언 스탠을 상대로 한 UFC 경기에서는 서로 엄청난 타격을 주고받은 끝에 2라운드 KO승을 거뒀다. 이 경기는 실바의 UFC 마지막 승리이자 마지막 UFC 경기였다. 이후 실바는 UFC 밖에서 두 차례 더 싸운 뒤 2018년 9월 29일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그의 커리어는 결국 MMA 역사에 남았다. 2024년 UFC는 반다레이 실바를 UFC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이는 그가 단순히 프라이드 시대의 인기 파이터였던 것이 아니라 현대 MMA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선구자였다는 의미다. UFC 역시 실바가 프라이드의 초기 슈퍼스타로서 전 세계 MMA 팬층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2026년 현재 실바는 더 이상 직접 케이지에 들어가는 파이터는 아니다. 하지만 격투기와 완전히 멀어진 것도 아니다. 현재 브라질을 중심으로 후배 파이터들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2026년에는 브라질의 유망 MMA 선수들을 발굴하고 후원·멘토링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새로운 선수들에게 훈련과 커리어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는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실바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것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싸움을 사랑했으며, 싸움이 끝난 뒤에도 격투기의 세계를 떠나지 않은 남자.”
프라이드의 링 위에서 사쿠라바를 쓰러뜨리고, 램페이지와 피할 수 없는 악연을 만들고, 쇼군과 형제처럼 지냈던 남자. 수없이 많은 펀치와 니킥을 맞으면서도 앞으로 걸어 나갔던 남자. 그리고 결국 자신의 이름을 UFC 명예의 전당에 새긴 남자.
반다레이 실바는 챔피언이었기 때문에 전설이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싸움이 무엇인지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전설이 됐다. 개인적으로 반다레이 실바 하면 생각나는 것 중의 하나가 그의 등장음악인데 프라이드에서 가장 신나는 등장음악 중 하나로 항상 언급되던게 반다레이 실바의 등장음악이다. Darude라는 핀란드 출신의 음악 프로듀서가 2000년에 발표한 <<sandstorm>>이라는 곡인데 운동할 때 들으면 나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저글링 마냥 운동 효과도 좋아지는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곡을 올리면서 이번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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