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a출신 파이터들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니, 이전 선수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모두 프라이드 출신의 파이터들이라는 건데, 생각해보면 프라이드라는 단체는 없어진 지 20년이 다 되었는데 그 단체의 선수들로만 파이터들을 나열하는 식은 좀 아닌거 같아 현 트렌드에 맞게 UFC 선수들을 넣도록 하겠다. 그래서 첫 번째 인물을 누구로 할까 고민했는데...지금의 UFC가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지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선수를 넣는게 의미가 있을거 같아 척 리델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 양반도 오랫동안 UFC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모를 수가 없는데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인 랜디커투어를 할까 싶었다가 UFC 경력과 임팩트를 놓고 봤을 때 척 리델부터 하는게 나을거 같다.
척 리델은 단순히 UFC에서 챔피언을 지낸 선수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MMA가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그 한가운데 서 있었던 상징적인 파이터였다. 특유의 모히칸 헤어스타일, 무표정한 얼굴, 거대한 오른손 한 방, 그리고 상대에게 맞아도 전혀 물러서지 않는 공격성은 그를 다른 선수들과 구분 짓는 요소였다.
1998년 UFC에 데뷔한 그는 2005년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뒤 전성기를 구가했고, 랜디 커투어·티토 오티즈·제레미 혼·헤나토 소브랄·반더레이 실바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싸웠다. 특히 2004~2006년에는 7연승을 모두 KO/TKO로 장식하며 UFC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연속 KO 행진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비록 말년에 KO패도 많아지고 전성기에 비해서 초라한 성적을 남겼지만 그가 UFC에 세운 공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1. 가난했던 산타바버라의 소년, 싸움을 배우다 — 척 리델의 어린 시절
척 리델은 1969년 12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버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다. 리델은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고, 어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자랐다. 훗날 리델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린 척 리델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학교에서 종종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이다. 당시 리델의 어머니 샬린은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아들이 계속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맞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결국 외할아버지가 어린 리델에게 직접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리델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복싱의 기본적인 펀치 등을 익히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12살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가라데를 배우기 시작했다. 리델에게 무술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훗날 그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 무술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꿈꿨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UFC라는 조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리델에게 싸움과 무술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2. 존 핵클먼을 만나다 — '아이스맨'에서 MMA 파이터로
척 리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 중 하나는 존 핵클먼과의 만남이었다. 핵클먼은 캘리포니아에서 자신의 체육관인 The Pit을 운영하며 하와이안 켄포를 기반으로 스트라이킹, 레슬링, 주짓수, 체력훈련 등을 결합한 독특한 훈련 방식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리델은 이곳에서 자신의 무술 능력을 본격적으로 MMA에 맞게 발전시켜 나갔다.
리델은 이미 레슬링과 가라데라는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킥복싱과 주짓수 등을 더하면서 점차 현대적인 MMA 파이터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특히 그의 레슬링은 일반적인 레슬러처럼 상대를 넘어뜨리고 상위 포지션에서 싸우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상대의 테이크다운을 막은 뒤 다시 일어서서 강력한 타격을 퍼붓는 것이 리델의 핵심이었다. 이 때문에 리델의 전성기 스타일은 상당히 독특했다. 그는 스탠딩에서 강력한 펀치를 던지면서도 상대가 태클을 들어오면 스프롤과 언더훅, 펜스 활용 등을 통해 막아냈다. 그리고 상대가 중심을 잃는 순간 다시 타격을 연결했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스프롤 앤 브롤(Sprawl and Brawl)'의 대표적인 파이터로 평가받는 이유다.


1998년 마침내 UFC에 데뷔했다. UFC 17에서 노에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승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UFC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당시의 UFC는 오늘날처럼 거대한 스포츠 조직이 아니었다. MMA 자체가 미국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선수들도 지금처럼 엄청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리델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싸우는 것을 좋아했고,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심지어 UFC에 데뷔하기 전엔 돈에 찌들리다 못해, 길거리에서 단돈 5달러를 받고 사람을 패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2001년에는 당시 전 UFC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케빈 랜들맨을 1라운드 78초 만에 KO시키면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UFC 역시 이 승리를 리델이 '가능성 있는 선수'에서 진짜 스타로 넘어가는 중요한 순간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3년 UFC 43에서 랜디 커투어에게 TKO로 패하면서 첫 번째 타이틀 도전이 좌절됐다. 그리고 일본 프라이드의 미들급 그랑프리에 참가해 알리스타 오브레임을 꺾었지만 준결승에서 퀸튼 '램페이지' 잭슨에게 패배했다. 당시 리델에게 잭슨은 단순한 패배 상대가 아니라 이후 그의 커리어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라이벌이 됐다. 그러나 리델은 여기서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패배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더욱 다듬었다. 그리고 마침내 UFC 역사상 가장 강렬한 전성기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3. 아이스맨의 시대 — UFC 챔피언이 되어 MMA의 얼굴이 되다
척 리델의 전성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리델이 스타가 된 시기는 UFC 자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와 정확하게 겹쳤다. 2004년 UFC 47에서 리델은 오랜 라이벌이었던 티토 오티즈를 2라운드 KO로 꺾었다. 당시 오티즈는 UFC를 대표하던 스타였고, 둘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감이 형성돼 있었다. 이 승리로 리델은 다시 타이틀 경쟁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2005년 4월 16일 UFC 52에서 다시 랜디 커투어와 만났다. 이번에는 달랐다. 리델은 1라운드 2분 6초 만에 커투어를 KO시키며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자신에게 첫 번째 큰 좌절을 안겼던 커투어를 상대로 타이틀을 빼앗았다는 점에서 이 승리는 리델에게 단순한 챔피언 등극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리델은 MMA 역사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 자체가 캐릭터가 된 파이터'였다. 머리 가운데를 세운 모히칸 헤어스타일, 팔과 몸의 문신, 특유의 차가운 표정 때문에 팬들은 그를 'The Iceman'이라고 불렀다. 그의 경기 역시 팬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제공했다. 복잡한 전략보다는 상대를 몰아붙이고 강력한 펀치로 경기를 끝냈다. 특히 오른손은 리델의 상징이었다. 정면에서만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각도와 타이밍을 바꾸며 들어왔고, 상대가 테이크다운을 시도할 때에도 강력한 어퍼컷과 훅을 연결했다.
이 시기에 리델의 인기는 UFC라는 울타리를 넘어섰다. 랜디 커투어와 함께 MMA가 미국 대중문화의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선수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UFC 역시 리델을 'MMA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등장한 얼굴'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시즌 1 The Ultimate Fighter에서 리델과 커투어가 코치로 등장한 것도 그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TUF는 MMA 선수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경쟁 과정을 대중에게 보여주며 UFC의 인기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리델 역시 이 프로그램이 UFC의 성장 속도를 크게 높였다고 직접 평가했다.
그러나 영원한 전성기는 없었다. 2007년 UFC 71에서 과거 프라이드에서 자신을 꺾었던 퀸튼 잭슨과 다시 만났고, 이번에는 UFC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걸고 싸웠다. 결과는 잭슨의 1라운드 KO승이었고, 잭슨의 정교한 복싱 앞에 mma형 타격가였던 리델도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4. 몰락, 마지막 불꽃 그리고 전설이 된 남자
퀸튼 잭슨에게 패한 이후 척 리델의 커리어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물론 그는 여전히 강력했고 팬들에게 사랑받았지만, 전성기의 압도적인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리델에게는 몇 차례 마지막 불꽃이 있었다. 2007년 UFC 79에서 당시 프라이드를 대표하던 일본의 스타 반더레이 실바와 맞붙었다. 두 선수 모두 엄청난 공격성을 가진 선수였기 때문에 이 경기는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대결이었다. 리델은 치열한 타격전 끝에 판정승을 거두며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개인적으로 이 경기는 UFC팬이라면 꼭 봐야할 경기로 추천한다. 진정한 노빠구 상남자들이 뭔지를 보여주는 경기.


하지만 이후 리델은 라샤드 에반스, 마우리시오 쇼군, 리치 프랭클린 등에게 패하며 커리어 후반부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2009년 쇼군에게 당한 KO는 리델의 전성기가 완전히 지나갔음을 보여주는 경기로 평가된다. 2010년 6월 UFC 115에서 리치 프랭클린에게 1라운드 KO 패배를 당한 뒤, 리델은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의 전적은 오랫동안 21승 8패로 알려졌지만, 이후 2018년 복귀전에서 티토 오티즈에게 패하면서 현재의 종합 MMA 전적은 21승 9패가 됐다.(개인적으로 2018년엔 나이가 50이었는데...왜 복귀했는지 의문이고, 오죽했으면 다른 파이터들도 보기에 안쓰럽고 슬펐다고 할 정도였다.)



오늘날 척 리델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그의 승패 기록이 아니다. 리델은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었고, UFC 명예의 전당 헌액자였으며, MMA가 미국에서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는 과정의 핵심 인물이었다. UFC는 그가 전성기 동안 보여준 7연속 KO/TKO 행진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리델 자신 역시 "나는 항상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리델의 가장 큰 유산은 어쩌면 MMA에서 '스타 파이터'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는 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테이크다운 방어와 강력한 복싱, 킥복싱을 결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수많은 팬들에게 MMA를 알렸다.
가난했던 산타바버라의 소년은 결국 UFC의 얼굴이 됐다. 12살에 시작한 무술은 평생의 직업이 됐고, 회계학 학위는 플랜 B로 남았다. 모히칸 헤어스타일과 파란색 경기복,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케이지에 들어가던 남자는 이제 MMA 역사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척 '아이스맨' 리델.
그의 시대는 끝났지만, '한 방의 공포'를 상징하는 파이터로서의 이미지는 UFC 역사에서 결코 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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