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글에서 척 리델을 봤으니, 이젠 랜디 커투어를 볼 차례라고 할 수 있을거 같다ㅎㅎ사실 지금의 UFC를 세상에 알린 두 인물이 랜디 커투어, 척 리델이었다 봐도 무방하다. 랜디 커투어(Randy Couture)는 MMA 역사에서 유난히 독특한 궤적을 그린 파이터다. 젊은 나이에 MMA에 뛰어든 천재형 선수가 아니라, 군인 → 대학 레슬러 → 국제 그레코로만 레슬러 → 33세의 늦은 나이에 MMA 데뷔 → UFC 6회 챔피언 → 배우와 사업가라는 길을 걸었다. 특히 헤비급과 라이트헤비급에서 모두 UFC 챔피언에 오른 최초의 선수였다는 점에서 그의 이름은 UFC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1. 소년 레슬러에서 군인으로 — 랜디 커투어의 기반이 만들어지다
1963년 6월 22일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서 태어난 랜디 커투어는 어린 시절부터 레슬링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린우드 고등학교에서 레슬링 선수로 성장했고,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는 워싱턴주 챔피언에 오르며 일찍부터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곧 일반적인 운동선수의 길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커투어는 1982년 미국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약 6년 동안 군 복무를 했으며, 101공수사단에서 복무하면서 최종적으로 병장 계급까지 올랐다. 군 복무 기간동안, 독일 등에서도 복무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군 복무가 그의 격투기 인생을 단순히 잠시 늦춘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커투어는 군에서도 레슬링과 복싱을 계속했고, 군인으로서 요구되는 체력과 규율, 압박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정신력을 익혔다. 훗날 커투어 자신도 군 생활을 통해 규율과 자신감, 경쟁에서 이기는 정신적인 기반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군에서 레슬링을 하면서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웠다는 점은 이후 그의 경력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88년 군 복무를 마친 뒤 커투어는 본격적으로 레슬링 선수의 길을 이어갔다. 레슬링으로 유명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NCAA 디비전Ⅰ 무대에서 활약하며 3차례 올 아메리칸에 선정됐고, 1991년과 1992년에는 NCAA 결승까지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2년에는 학업까지 마쳐 독일어를 포함한 외국어·문학 분야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즉, 커투어의 강인함은 단순히 타고난 신체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레슬링, 6년간의 군 생활, NCAA 정상급 레슬링, 그리고 국제 그레코로만 레슬링이라는 여러 단계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며 훗날 MMA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레슬링 기반 파이터 중 한 명을 만들어냈다.
2. 그레코로만 레슬링과 올림픽의 꿈 — MMA를 만나기 전의 커투어
커투어의 진짜 특징을 이해하려면 NCAA 레슬링만 봐서는 부족하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에도 레슬링을 계속했고, 특히 그레코로만 레슬링에 집중했다. 그레코로만 레슬링은 상대의 다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상체를 중심으로 상대를 들어 올리고 던지는 기술이 핵심인데, 이 설명은 'mma의 밑거름' 카테고리 중 레슬링에 대한 부분에 설명이 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아무튼 이 경험은 훗날 커투어의 MMA 스타일을 결정짓는 중요한 자산이 됐다.
커투어는 1988년, 1992년, 1996년 미국 올림픽 대표팀 후보 선수로 이름을 올렸으며, 2000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는 37세라는 나이에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세계선수권에도 1991년, 1993년, 1995년, 1997년에 출전했고, 1997년 대회에서는 9위를 기록했다. 즉, 단순히 '레슬링을 잘하는 MMA 선수'가 아니라 실제로 국제 수준의 그레코로만 레슬링 무대에서 경쟁했던 선수였다.



이 시절의 경험은 UFC에서 굉장한 무기가 됐다. 그레코로만 레슬링 특유의 클린치, 언더훅, 상체 힘, 균형을 무너뜨리는 기술, 상대를 들어 올리는 능력은 케이지를 사용하는 UFC와 매우 잘 맞았다. 이는 케이지에서는 상대의 등을 철망에 붙인 뒤 상체를 잡고 압박하는 전술이 가능했는데, 커투어는 이 영역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NCAA 레슬링에서 얻은 테이크다운 능력과 군 생활에서 만들어진 체력과 정신력이 결합됐다. 커투어가 훗날 보여준 대표적인 전술인 클린치 압박 → 케이지 몰기 → 테이크다운 → 상위 포지션 → 그라운드 앤 파운드는 바로 이 경력의 결과물이었다. 미국 의회에 제출된 그의 공식 약력에서도 커투어는 25년 이상의 프리스타일 및 그레코로만 레슬링 훈련을 바탕으로 MMA에서 그라운드 앤 파운드를 주요 공격 방식으로 사용했다고 소개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커투어는 레슬링에서 자신이 바라던 올림픽 금메달을 얻지 못했다. 세 차례 올림픽 대표팀 후보에 올랐지만 실제 올림픽 본선 무대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3. 33세에 시작한 UFC — ‘더 내추럴’은 늦게 등장했다
커투어가 MMA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점은 놀랍게도 33세였다. 오늘날 기준으로 생각하면 정상급 MMA 선수가 되기에는 상당히 늦은 나이다. 하지만 커투어에게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레슬링 경험과 군인으로서의 정신력이라는 엄청난 자산이 있었다. 1997년 UFC 13에서 MMA 데뷔전을 치른 커투어는 헤비급 토너먼트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첫 UFC 출전부터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곧이어 UFC 15에서 당시 무시무시한 타격가였던 비토 벨포트를 만났다. 젊고 폭발적인 벨포트의 스피드와 파워에 맞서 커투어는 정면 난타전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상대의 공격을 피하면서 거리를 좁히고 클린치로 연결한 뒤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다. 이후 상위 포지션에서 끈질기게 압박하며 그라운드 앤 파운드를 퍼부어 TKO 승리를 거뒀다.


이 승리를 통해 커투어는 자신의 MMA 스타일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그는 상대보다 빠르거나 더 화려한 선수가 아니었다. 대신 상대의 공간을 빼앗고, 케이지로 몰고, 클린치에서 힘으로 제압하고, 레슬링으로 넘어뜨린 뒤 지치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다. 훗날 이것은 '더티복싱'으로도 유명해진다. 클린치 상황에서 짧은 펀치를 섞어 상대를 괴롭히는 그의 스타일은 복싱과 레슬링의 경계를 허물었다.
커투어는 이후 UFC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자신의 시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3년에는 라이트헤비급으로 내려가 챔피언이었던 척 리델과 경쟁했고, 결국 UFC 44에서 티토 오티즈를 꺾고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이후 다시 헤비급과 라이트헤비급을 오가며 타이틀을 차지했다. 결국 그는 헤비급 3회, 라이트헤비급 2회 등 총 6회의 UFC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역사적인 선수가 됐다. UFC 역사에서 두 체급 챔피언이라는 기록을 만든 최초의 선수라는 점도 그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특히 커투어의 전설을 완성한 장면은 2007년이었다. 43세의 나이에 은퇴를 번복하고 헤비급으로 돌아온 그는 당시 챔피언 팀 실비아를 상대로 UFC 68에서 도전했다. 신체 조건에서는 실비아가 훨씬 유리했지만 커투어는 압박과 레슬링, 복싱을 결합해 5라운드 판정승을 거두며 다시 챔피언이 됐다. 나이는 많았지만 싸움의 지능과 경험은 오히려 절정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이후 크로캅을 실신시키고 타이틀전을 획득한 신성 가브리엘 곤자가를 상대로도 더티 복싱과 클린치를 이용한 관록을 앞세워 타이틀 방어에도 성공하였다.
4. 47세까지 이어진 도전, 그리고 할리우드와 제2의 인생
커투어의 커리어가 특별한 이유는 전성기만이 아니라 전성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도전했다는 것이다. 2007년 헤비급 타이틀을 되찾은 뒤 그는 브록 레스너와 맞붙었다. 2008년 UFC 91에서 펼쳐진 이 경기는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경기로 평가됐다. NCAA 출신의 거대한 신예 레스너와 오랜 경험을 가진 커투어가 충돌했고, 결국 레스너가 TKO로 승리하며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커투어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이후에도 MMA 선수로 활동했고, 2010년 UFC 109에서는 마크 콜먼을 꺾었으며, 2011년 UFC 129에서 리오토 마치다와 맞붙은 것을 마지막으로 현역 경쟁에서 물러났다. 그는 47세까지 프로 MMA 무대에서 싸운 선수가 됐고, 33세에 데뷔해 40대 후반까지 정상급 경쟁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현대 MMA에서도 보기 드문 장수형 파이터로 남았다.
그리고 은퇴 이후 커투어는 또 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Xtreme Couture MMA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후배 파이터들을 육성했고,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특히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끄는 영화 《익스펜더블》 시리즈에서 '톨 로드(Toll Road)' 역할을 맡으면서 격투기 팬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얼굴을 알렸다.


특히 군 경력을 단순한 과거로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커투어는 2009년 Xtreme Couture GI Foundation을 설립해 부상당한 미군 참전용사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참전용사와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프로그램인 Merging Vets & Players에도 참여했다.
2026년 현재 커투어는 선수로서는 은퇴했지만 MMA와 완전히 떨어져 있지는 않다. PFL 해설자로 오랜 기간 활동해 왔으며, 최근에는 체육관 운영과 베테랑 지원 활동, 방송·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6년 인터뷰에서는 PFL 해설진에서 잠시 빠지면서 참전용사 관련 자선활동과 다른 프로젝트에 더 시간을 쏟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랜디 커투어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늦게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오래 정상에 있었던 파이터”라고 할 수 있다. 군인으로 단련되고, NCAA 레슬러가 되었으며, 국제 그레코로만 무대에서 올림픽의 꿈을 좇았고, 33세라는 늦은 나이에 MMA에 뛰어들어 UFC 역사상 최초의 2체급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은퇴 후에는 배우와 사업가, 코치, 해설자, 참전용사 지원가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래서 'The Natural'이라는 별명은 단순히 격투기 실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 놓여도 새로운 무대에 적응하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낸 커투어라는 사람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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