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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관련 역사

RAF — 레슬링은 더 이상 올림픽 매트에만 머물지 않는다: 격투 스포츠의 판도를 흔드는 새로운 전장

by 사모안괴물 2026. 10. 20.

  프리스타일 레슬링은 오랫동안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화려한 타격도, 피를 부르는 난타전도 없지만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다리를 파고들고, 단 한 번의 기회로 승부를 뒤집는 기술의 세계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는 이 전통적인 레슬링을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에게 선보이려는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단체가 바로 RAF(Real American Freestyle)다.

  RAF는 레슬링을 단순한 아마추어 스포츠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유명 선수들의 대결과 프로 스포츠 특유의 흥행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려는 프로젝트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NCAA 레슬링 스타, 격투기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한 무대에서 맞붙는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모은다.

 
 

  이 글에서는 RAF의 탄생 배경과 운영 방식, 경기 규칙, 주요 선수들, 그리고 종합격투기(MMA)를 비롯한 격투 스포츠 전체에 미칠 가능성까지 네 가지 주제로 살펴본다.

1. 아마추어 레슬링의 한계를 깨다 — RAF는 왜 탄생했는가?

 
 
 
 
UFC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왼쪽 선수는 다름아닌 전 웰터급 챔피언 벨랄 무하마드이다.

 

  RAF의 정식 명칭은 Real American Freestyle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프리스타일 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프로 경기 단체이며, WWE처럼 승패가 각본으로 정해진 프로레슬링과는 전혀 다른 조직이다. 선수들은 실제로 승리를 놓고 경쟁하며, 테이크다운과 기술 점수, 폴(fall·상대의 양쪽 어깨를 매트에 눌러 제압하는 것) 등을 통해 승부를 가린다.

  RAF가 등장한 배경에는 미국 레슬링계가 오랫동안 안고 있던 문제가 있다. 미국 대학 레슬링은 NCAA를 중심으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해 왔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보여 왔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거나 올림픽 도전을 마친 선수들이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서 안정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프로 무대는 제한적이었다. MMA로 전향하면 레슬링 실력을 활용할 수 있지만, 타격과 주짓수까지 새롭게 익혀야 하고 부상 위험도 커진다. 순수 레슬링을 계속하고 싶어도 대중적인 관심과 경제적 보상을 동시에 얻기는 쉽지 않았다.

  RAF는 바로 이 공백을 메우겠다는 목표로 출범했다. 엘리트 레슬러들에게 프로 무대를 제공하고, 유명 선수들의 맞대결과 흥미로운 라이벌 구도를 통해 관중과 시청자를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단체의 공식 소개에 따르면 RAF는 남녀 엘리트 체급을 운영하며, 국제 프리스타일 레슬링 규정을 바탕으로 프로 스포츠의 흥행 요소를 결합한다.

  또한 RAF는 레슬링을 잘 아는 전문 팬뿐 아니라 MMA 팬과 일반 스포츠 시청자까지 겨냥한다. 올림픽 레슬링은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지만, 평소 레슬링을 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경기의 흐름이나 점수 체계가 낯설 수 있다. RAF는 유명 파이터의 출전, 선수 간 경쟁 구도, 타이틀전과 같은 요소로 이러한 진입 장벽을 낮추려 한다.

  중요한 점은 RAF가 기존 레슬링을 폐기하려는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전통적인 레슬링 기술을 유지하면서 선수들이 더 많은 관심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려는 시도다. 다만 프로 리그가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유명 선수의 출전만으로는 부족하다. 꾸준한 경기 편성, 공정한 판정, 신인 발굴, 안정적인 중계와 수익 구조까지 갖춰야 한다. RAF의 진정한 도전은 화제성 있는 이벤트를 넘어 레슬링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2. 6분 안에 승부를 끝내라 — RAF의 경기 규칙과 점수 체계

 
 
 
 
 

  RAF의 경기를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경기 규칙을 이해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국제 프리스타일 레슬링의 기술과 득점 체계를 따르지만, 경기 시간과 운영 방식에는 RAF 특유의 조정이 들어간다. 2026년 10월 현재 공개된 규칙 안내에 따르면 일반적인 경기는 2분씩 3개 피리어드, 총 6분으로 진행되며, 피리어드 사이에는 30초 휴식이 주어진다. 경기 중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거나 큰 점수 차이를 만들면 정규 시간이 끝나기 전에 승부가 결정될 수 있다.

 

① 테이크다운 — 2점

  상대의 다리나 상체를 공략해 매트로 넘어뜨리고 제어하는 기술이다. 레슬링의 가장 기본적인 공격 중 하나다. 단순히 상대를 밀어 넘어뜨리는 것보다 확실하게 공격을 완성하고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② 노출 점수(Exposure) — 보통 2점, 고난도 던지기는 4~5점

  상대의 등이 매트를 향하도록 돌리거나, 서 있는 상태에서 큰 진폭의 던지기로 상대의 등을 노출하면 점수를 얻는다. 기술의 종류와 실행 상황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

 

③ 스텝아웃 — 1점

  상대를 경기장 바깥으로 밀어내면 득점할 수 있다. 따라서 선수는 중앙을 차지하려는 동시에 경계선에 몰리지 않도록 움직여야 한다.

 

④ 폴(Pinfall) — 즉시 경기 종료

  상대의 양쪽 어깨를 매트에 제압해 심판이 폴을 인정하면 남은 시간과 관계없이 경기가 끝난다. 점수에서 앞서고 있어도 폴을 당하면 패배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아래쪽에서 유리한 자세로 전환하는 리버설은 1점이며, 심판이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경고한 뒤 정해진 30초 동안 득점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1점이 주어지는 샷 클록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점수 차이가 10점에 도달하면 테크니컬 폴로 경기가 끝난다. 정규 시간 종료 시에는 점수가 높은 선수가 승리하며, 연장전 없이 동점일 경우 마지막으로 득점한 선수가 승리하는 방식이 공개된 규칙에 명시돼 있다.

  RAF의 경기를 MMA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선명하다. MMA에서는 테이크다운 이후 파운딩이나 서브미션으로 승리를 노리지만, RAF에서는 테이크다운 자체와 상대의 등을 노출하는 기술이 직접적인 득점 수단이다. 타격과 서브미션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MMA에서 강력한 레슬링을 보여 준 선수라도 RAF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넘어뜨린 뒤 공격을 이어가는 능력과 순수 레슬링의 득점 기술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기 시간이 짧다는 점도 중요하다. 6분 안에 점수를 쌓아야 하므로 소극적인 탐색전만 이어가기 어렵고, 공격을 시도할 시점과 체력을 배분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결국 RAF는 레슬링의 기술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승부가 갈리는 긴장감을 강조하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3. 올림픽 챔피언부터 UFC 스타까지 — RAF를 빛내는 주요 선수들

 
 
 
 
 

  RAF의 가장 큰 매력은 선수들의 이력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라는 점이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검증된 레슬러, 미국 대학 레슬링의 스타, MMA에서 이름을 알린 파이터가 같은 규칙 아래에서 경쟁한다. 이들이 서로 다른 종목에서 쌓은 명성을 레슬링 매트 위에서 직접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 RAF만의 흥미다.

  카일 스나이더(Kyle Snyder)는 미국 레슬링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자유형 97kg급 금메달을 획득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한 경력을 지녔다. 강한 체력과 폭발적인 공격력,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역습하는 능력이 장점이다. RAF에서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어, 국제 무대의 정상급 레슬러가 프로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는지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선수다.

  카일 데이크(Kyle Dake)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대학 레슬링에서 NCAA 디비전 1 4회 우승을 달성했으며, 시니어 국제 대회에서도 세계 정상급 성적을 거뒀다.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기술과 빠른 포지션 전환, 다양한 공격 연결이 강점이다. RAF 공식 챔피언 명단에서도 이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의 경기는 단순히 힘으로 상대를 누르는 것과 정교한 기술로 점수를 쌓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 준다.

전 UFC 웰터급 파이터였던 콜비 코빙턴. '스턴건' 김동현의 UFC 마지막 상대로도 국내에서 유명하다.
 
 
 
UFC 라이트급 파이터지만 RAF에서 자주 모습을 보이는 아르만 사루키안
 

  RAF가 MMA 팬들에게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출전이다. 콜비 코빙턴(Colby Covington)은 미국 대학 레슬링을 기반으로 UFC 웰터급 타이틀전에 여러 차례 나섰던 선수다. 경기 내내 상대를 압박하는 레슬링과 끈질긴 체력으로 유명하다. RAF에서는 크로스오버 부문 챔피언에 올라 있어 MMA에서 활용했던 레슬링을 순수 레슬링 규칙 아래에서 보여 주는 사례가 됐다.

  헨리 세후도(Henry Cejudo)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이자 UFC 플라이급·밴텀급 챔피언을 지낸 인물이다. 레슬링과 MMA 양쪽에서 정상에 오른 이력은 RAF의 취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아르만 사루키안(Arman Tsarukyan) 역시 UFC에서 뛰어난 그래플링과 레슬링을 보여 준 선수로, 최근엔 RAF 무대에서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양 단체에서의 활약이 관심을 모은다. 사루키안은 2026년 10월 23일 예정된 RAF 14에서 딜런 대니스(Dillon Danis)와 미들급 크로스오버 타이틀을 놓고 맞붙을 예정이다.

  여성 선수들도 RAF의 중요한 축이다. 케네디 블레이즈(Kennedy Blades)는 미국의 유망한 엘리트 레슬러로, RAF 공식 명단에서 여성 미들급 챔피언으로 소개된다. 헬렌 마룰리스(Helen Maroulis)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미국 여성 레슬러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역사적인 선수이며, 루시아 예페스(Lucia Yépez)는 국제 대회에서 활약한 에콰도르의 정상급 레슬러다. 이처럼 RAF는 남성 MMA 스타들의 이벤트에 머물지 않고 여성 레슬링의 경쟁력과 인지도를 높일 가능성도 갖고 있다.

  다만 유명 선수라고 해서 모두 순수 레슬링에서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MMA에서 뛰어난 테이크다운 방어를 보이는 선수도 레슬링 전문 선수의 연속 공격과 득점 운영에는 고전할 수 있다. 반대로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레슬러가 MMA에서도 자동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RAF는 이러한 차이를 실제 경기로 확인할 수 있는 실험장이자, 각 선수의 레슬링 실력을 새로운 기준으로 평가하는 무대다.

4. 레슬링의 새로운 황금기를 열 것인가 — RAF의 확장과 미래

 
 
 
 
 

  RAF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레슬링을 얼마나 넓은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느냐다. 레슬링은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스포츠지만, 축구나 농구처럼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프로 스포츠와 비교하면 선수들의 인지도와 상업적 기반이 제한적이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관심이 커지지만, 대회가 끝나면 일반 대중의 시선이 빠르게 다른 종목으로 이동하는 현상도 반복됐다.

  RAF는 이러한 한계를 프로모션 방식으로 돌파하려 한다. 유명 선수들의 맞대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타이틀과 체급별 경쟁을 운영하며, 경기 중계를 통해 팬들이 선수의 실력과 개성을 꾸준히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식 홈페이지는 선수 명단과 챔피언 정보를 공개하고 있으며, 경기 일정과 중계 접근성도 함께 안내한다.

  2026년에는 해외 진출도 중요한 변화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은 RAF가 2026년 7월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첫 북미 외 국제 이벤트를 개최할 계획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조지아는 세계적인 레슬러들을 배출한 국가로, 레슬링이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지 팬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장소에서 국제 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RAF가 미국 시장에만 머물지 않고 레슬링의 전통이 강한 지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과제는 선수들의 경제적 안정성이다. 프로 리그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유명 선수에게만 높은 관심과 보상이 집중되는 구조를 넘어, 중견 선수와 신인에게도 충분한 경기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레슬링은 선수의 전성기가 짧을 수 있고,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RAF가 선수들에게 안정적인 수입과 지속적인 경쟁 기회를 제공한다면, 대학 졸업 이후에도 레슬링을 계속할 수 있는 새로운 경력 경로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MMA 팬의 관심이 실제 레슬링 시청으로 이어질지, 이벤트가 끝난 뒤에도 선수들의 인기가 유지될지, 대형 대회와 중계 사업이 지속 가능한 수익을 낼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유명 파이터의 이름을 앞세우는 전략이 단기적인 화제성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리그의 장기적인 성장은 경기 자체의 품질과 공정성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RAF의 시도는 의미가 있다. 레슬링을 단순히 올림픽 메달을 위한 종목이나 MMA 선수가 사용하는 기술의 원천으로만 보지 않고, 그 자체로 관람할 가치가 있는 프로 스포츠로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RAF가 더 많은 국가와 선수를 연결하고 체급별 경쟁 체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킨다면, 레슬링은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만 주목받는 스포츠에서 벗어나 연중 즐길 수 있는 프로 경기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마치며 — 매트 위에서 시작되는 레슬링의 두 번째 인생

  RAF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레슬링 선수들에게 새로운 프로 무대를 제공하고, 레슬링 자체를 흥행 가능한 스포츠로 발전시키려는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일 스나이더와 카일 데이크 같은 엘리트 레슬러부터 콜비 코빙턴과 헨리 세후도 같은 MMA 스타까지, 서로 다른 배경의 선수들이 같은 규칙으로 경쟁한다는 점은 기존 레슬링 대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매력이다.

  앞으로 RAF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속 가능한 리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레슬링의 기술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선수들의 인지도와 경제적 기회를 함께 높이려는 시도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격투 스포츠 팬이라면 RAF를 통해 MMA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선수들의 순수 레슬링 실력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