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주먹을 맞부딪치는 격투는 현대 복싱이나 MMA의 기준에서 보면 매우 낯설다. 하지만 Bare Knuckle Fighting Championship(BKFC)는 이 낯선 형태의 싸움을 하나의 정식 프로스포츠로 만들어냈다. 장갑을 벗는 순간 경기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펀치의 충격뿐 아니라 피부가 찢어지는 컷, 손가락과 손등의 부상, 짧은 거리에서의 난타전 등이 경기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BKFC가 단순히 ‘장갑을 벗은 복싱’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특한 원형 링과 ‘Toe the Line’이라는 시작 방식, 2분 5라운드라는 짧은 경기 구성 등을 통해 자신들만의 격투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제는 전 UFC 챔피언과 MMA 스타, 프로복서들이 BKFC로 넘어오면서 맨손 복싱은 하나의 독립된 격투 종목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1. 금지됐던 주먹싸움의 부활 — BKFC는 어떻게 시작됐나
BKFC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맨손 복싱’이라는 스포츠 자체의 역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적인 복싱에서 장갑은 너무나 당연한 장비지만, 18~19세기 영국과 미국의 초기 복싱에서는 장갑 없이 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19세기 영국의 베어 너클 복싱은 오늘날의 복싱과 달리 넘어뜨리기, 클린치, 레슬링적인 움직임까지 상당 부분 허용했던 격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선수 보호와 경기의 제도화를 위해 글러브와 체계적인 규칙이 도입됐고, 맨손 복싱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 이 오래된 격투 방식이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등장한 단체가 바로 BKFC였다. 전직 프로복서였던 데이비드 펠드먼(David Feldman)이 이끄는 BKFC는 2018년 미국에서 공식적인 맨손 격투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BKFC는 미국에서 1889년 이후 처음으로 합법적이고 규제된 맨손 격투 대회를 개최한 프로모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초창기의 BKFC는 지금처럼 거대한 글로벌 단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존 복싱과 MMA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날것의 경기 방식이 강렬한 관심을 끌었다. 특히 ‘글러브가 없으니 무조건 난타전이 되겠지’라는 예상과 달리 선수들은 오히려 정확한 거리 조절과 펀치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했다. 작은 실수 하나가 손의 골절이나 얼굴의 깊은 컷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BKFC가 성장하면서 KnuckleMania 같은 대형 이벤트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4년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UFC의 슈퍼스타 코너 맥그리거가 BKFC의 공동 소유자로 참여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맥그리거는 단순한 홍보대사가 아니라 직접 지분을 가진 공동 소유자로 합류했고, BKFC의 대중적 인지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결국 BKFC의 역사는 ‘사라졌던 옛날 스포츠를 그대로 복원한 역사’라기보다는, 19세기의 맨손 격투를 21세기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 재해석한 역사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2. 글러브를 벗으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 BKFC의 독특한 룰



BKFC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것은 역시 룰이다. 흔히 ‘맨손 복싱’이라고 하면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서로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실제 BKFC는 안전과 경기성을 고려해 상당히 구체적인 규칙을 적용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손이다. BKFC에서는 손목과 엄지, 손의 중간 부분에 붕대와 테이프를 감는 것은 허용하지만 너클, 즉 주먹 관절에서 1인치 이내에는 거즈나 테이프를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완전히 아무것도 감지 않은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주먹 관절을 보호하지 않는 맨손 복싱’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공격 수단은 복싱처럼 펀치가 중심이다. 킥, 엘보, 니, 테이크다운과 그래플링은 허용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닫힌 주먹으로 공격해야 하지만, 클린치 상황에서는 빠져나오기 위한 오픈핸드 펀치가 허용된다. 클린치에서 약 3초 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심판이 두 선수를 분리한다.
또 하나의 독특한 장면이 바로 ‘Toe the Line’이다. BKFC의 링 중앙에는 두 개의 선이 약 3피트 간격으로 표시되어 있다. 매 라운드가 시작될 때 두 선수는 각자의 앞발을 선에 올려놓고 마주 선다. 심판이 “Knuckle Up”을 외치면 라운드가 시작된다. 즉, 일반 복싱처럼 코너에서 뛰어나와 중앙에서 거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서로 마주 선 상태에서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경기는 기본적으로 2분 5라운드로 진행된다. 다운이 발생하면 선수에게 10초가 주어지며, 쓰러진 상대를 때리는 것은 금지된다. 또한 얼굴에 큰 컷이 생겨 출혈이 시야를 방해할 경우에는 컷맨에게 제한적인 치료 시간이 주어지고, 통제가 되지 않으면 심판이 경기를 중단할 수 있다.
이러한 룰 때문에 BKFC는 일반 복싱보다 상당히 독특하다. 장갑이 없으므로 펀치의 ‘충격’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어떻게 때리느냐, 어떤 각도로 주먹을 맞히느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동시에 짧은 라운드와 가까운 시작 거리 때문에 초반부터 강한 압박과 난타전이 펼쳐질 가능성도 높다.
3. 맨손의 아이콘 — BKFC를 만든 대표적인 파이터들



BKFC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스타 파이터의 등장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인물이 마이크 페리다. UFC에서 활동했던 페리는 특유의 공격적인 스타일과 강력한 펀치력을 앞세워 BKFC의 대표적인 스타로 자리 잡았다. BKFC 공식 프로필에서도 그를 사실상 단체의 대표적인 얼굴로 소개하고 있으며, 루크 락홀드와 에디 알바레즈 같은 전 UFC 챔피언급 선수들을 꺾으며 맨손 복싱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특히 2023년 BKFC 56에서 에디 알바레즈를 상대로 거둔 승리는 페리의 대표적인 경기 가운데 하나다. 페리는 알바레즈의 눈 주변을 심하게 손상시키며 코너 스톱에 의한 TKO 승리를 거뒀고, 당시 경기에서 BKFC의 ‘King of Violence’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 경기는 BKFC가 단순히 유명 MMA 선수들이 은퇴 후 잠시 들르는 무대가 아니라, 자체적인 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경기였다.
또 다른 대표적인 스타가 존 도슨이다. UFC에서 플라이급 타이틀 도전까지 경험했던 도드슨은 BKFC로 넘어와 엄청난 스피드와 폭발적인 펀치 연타를 선보였다. 그는 BKFC 최초의 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고, 2026년 현재도 현역 챔피언으로 등록되어 있다.
여성부에서는 크리스틴 ‘미스핏’ 페레아가 대표적인 선수다. 무에타이와 MMA를 경험한 페레아는 BKFC 3에서 데뷔한 뒤 여성부의 상징적인 스타로 성장했고, 2026년 현재 12승 1패의 기록을 보유한 여성 플라이급 챔피언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 세대에서는 ‘King’ 카이 스튜어트의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스튜어트는 맨손 복싱에서도 자신의 거리 조절과 압박 능력을 발전시켰고, BKFC 최초의 145파운드 챔피언으로 기록됐다. 2026년 현재 공식 기록은 10승 무패다.
이 밖에도 루이스 팔로미노, 데이비드 먼델, 브리튼 하트, 제시카 보르가, 아놀드 아담스 등은 BKFC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이름으로 꼽힌다. 결국 BKFC의 역사는 단체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글러브를 벗은 새로운 격투 스타’가 탄생한 역사이기도 하다.
4. 장갑을 벗은 격투의 미래 — 글로벌 스포츠가 된 BKFC



BKFC는 이제 더 이상 미국의 이색적인 맨손 격투 단체에 머물러 있지 않다. 2026년 현재 BKFC는 미국을 넘어 영국, 호주, 남미, 유럽 등으로 이벤트를 확장하며 국제적인 프로모션으로 성장하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2026년 7월 우루과이 대회, 9월 영국 맨체스터 대회와 호주 대회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9월 26일에는 맨체스터 AO Arena에서 BKFC 94: 대런 틸 vs 요엘 로메로라는 대형 이벤트까지 개최했다.
특히 대런 틸과 요엘 로메로의 맞대결은 BKFC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틸은 UFC에서 타이틀전을 경험했던 유명 MMA 스트라이커이고, 로메로는 세계선수권 우승 경력을 가진 쿠바 출신의 전설적인 자유형 레슬러다. 두 선수가 글러브를 벗고 BKFC 링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맨손 복싱의 위상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2026년 현재 BKFC는 미국 내에서도 대형 경기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8월에는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 BKFC 92를 개최했고, 이후 맨체스터에서 BKFC 94를 열었다. 10월에는 뉴저지에서 BKFC 95가 예정되어 있으며, 공식 홈페이지에는 10월 벨그레이드 대회와 11월 글래스고 대회까지 일정이 올라와 있다.


방송 영역에서도 변화가 크다. BKFC는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을 운영하는 동시에 일부 이벤트를 DAZN을 통해 중계하고 있다. 즉, 단순한 지역 이벤트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스포츠 미디어 상품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맨손으로 싸우는 스포츠인 만큼 얼굴의 열상과 손 부상 등 특유의 위험성이 존재하고, ‘얼마나 안전하게 스포츠로 정착할 수 있는가’라는 논란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BKFC는 바로 그 위험성과 원초성을 규칙과 의료진, 체급제, 심판 시스템을 통해 스포츠의 틀 안으로 가져오려 하고 있다.
결국 BKFC의 가장 큰 의미는 ‘맨손으로 싸운다’는 단순한 자극에 있지 않다. 복싱은 글러브를 통해 안전성과 기술성을 발전시켰고, MMA는 여러 격투 종목을 하나의 스포츠로 통합했다. BKFC는 그 반대 방향에서 출발해 글러브를 벗어던짐으로써 복싱이라는 스포츠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BKFC의 링에서 벌어지는 것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19세기의 맨손 격투가 21세기의 스포츠 비즈니스와 만나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격투 장르다. 앞으로 더 많은 복서와 MMA 파이터들이 이 무대에 합류한다면, BKFC는 ‘복싱에서 글러브를 벗은 경기’라는 평가를 넘어 MMA·복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격투 스포츠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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