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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의 역사 — 격투기 대회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까지

by 사모안괴물 2026. 9. 27.

 필자는 격투기를 시청한지 25년이 다 되간다...처음 봤던 대회가 espn에서 방송을 해줬던 k-1 wgp 대회였는데 당시 우승자가 '사모아의 괴인'인 마크헌트였고 그 이후부터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이, 마크헌트의 팬이 되었다. 이 양반의 성장스토리와 일대기를 보면 알 사람은 알겠지만 영화로 한 편을 써도 될 정도로 인생에 굴곡이 많았다. 이 얘기도 조만간 글로써 게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현대 2020년대에 들어선 k-1과 같은 입식격투기는 쇠락의 길을 걷고있고(물론 글로리 대회가 근근히 열리긴 한다. 대표적으로 현 ufc 최고 스타인 알렉스 페레이라가 글로리 출신의 킥복서였으니) 격투기=mma라는 종합격투기로 통하고 있다. 그 중 메이저리그 격인 단체가 모두들 들어봤을 법한 ufc라는 단체인데 필자가 생중계로 처음 시청한게 ufc70에서 크로캅이 가브리엘 곤자가에게 하이킥으로 ko당한 경기이다...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 받았던 충격은 생생하다.

 아무튼, 이번 글에서는 ufc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며 과거의 격투 단체였던 k-1과 pride fc에 관해서는 추후 올리도록 하겠다. UFC의 역사는 단순히 유명한 선수와 명경기를 나열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다른 무술 중 어떤 것이 가장 강한가?’라는 실험적인 질문에서 시작한 대회가 어떻게 종합격투기(MMA)라는 하나의 스포츠를 만들고, 이후 세계적인 스포츠 비즈니스로 성장했는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1. UFC의 탄생 — “과연 어떤 무술이 가장 강한가?”

 
 

 UFC의 시작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서는 복싱, 레슬링, 가라테, 킥복싱, 주짓수 등 다양한 격투 종목이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등장했다. “서로 다른 무술의 고수가 실제로 싸운다면 어떤 무술이 가장 강할까?”라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1993년 11월 12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UFC 1이 개최됐다. 당시 UFC는 지금처럼 체급이 세분화되고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는 스포츠 대회가 아니었다. 여러 격투 종목의 선수들이 한 토너먼트에 참가해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으며, 지금의 종합격투기와 비교하면 상당히 거칠고 실험적인 형태였다. UFC가 공식적으로 밝히는 초기 목표 역시 여러 무술의 선수들이 참가해 단일 대회에서 ‘Ultimate Fighting Champion’을 가리는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 특히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이 호이스 그레이시(Royce Gracie)였다. 브라질리언 주짓수(BJJ)를 기반으로 한 그레이시는 자신보다 훨씬 크고 강해 보이는 선수들을 상대로 그라운드 기술과 서브미션을 활용했다. UFC 1에서 그레이시는 아트 지머슨, 켄 샴록, 제라르 고르도를 차례로 꺾고 우승했다. 당시에는 브라질리언 주짓수가 미국 대중에게 익숙한 무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활약은 상당한 충격을 줬다.

  이러한 초기 UFC가 남긴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한 가지 무술만으로는 모든 상황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복싱 선수에게는 펀치가 있었고, 레슬러에게는 테이크다운과 컨트롤이 있었으며, 주짓수 선수에게는 그라운드와 서브미션 기술이 있었다. 서로 다른 기술이 실제 경기에서 부딪히면서 오늘날 MMA의 기본적인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초기 UFC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논란도 불러왔다. 지나치게 거칠고 위험한 경기라는 비판이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대회 개최와 방송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 이에 따라 UFC는 시간이 지나면서 체급, 라운드, 반칙 규정, 심판 제도 등을 점차 도입했다. 결국 초기의 ‘무술 실험’에 가까웠던 UFC는 선수 보호와 경기의 공정성을 중시하는 스포츠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UFC 역시 30주년을 돌아보며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 규정과 경기 규칙이 계속 발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1990년대 UFC는 오늘날의 완성된 스포츠가 아니라 MMA가 어떤 스포츠가 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실험장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짓수, 레슬링, 복싱, 킥복싱 등 서로 다른 기술을 하나의 경기 안에서 조합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 UFC의 위기와 변화 — Zuffa 인수, 그리고 ‘스포츠’로의 전환

 
 
 
  1990년대 후반의 UFC는 지금과 같은 거대한 스포츠 기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회 자체는 계속됐지만 규제와 이미지 문제 등으로 인해 사업적인 어려움도 컸다. 결국 UFC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했다. 중요한 전환점은 2001년 1월이었다. 프랭크 퍼티타 3세, 로렌조 퍼티타, 그리고 데이나 화이트가 참여한 Zuffa가 UFC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UFC 공식 역사에서도 2001년 Zuffa 인수 이후 UFC가 더욱 체계적이고 규제된 스포츠로 재편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 시기에 UFC가 가장 중요하게 추진한 것은 ‘UFC를 단순한 격투 이벤트가 아니라 스포츠로 만드는 것’이었다. 체급을 정비하고, 경기 규칙을 발전시키고, 주 체육위원회의 규제를 받아들이면서 선수들이 보다 체계적인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 예전의 UFC가 ‘어떤 무술이 가장 강한가?’라는 질문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최고의 MMA 선수는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스포츠로 성격이 바뀌었다.

  선수들의 스타일도 이에 맞춰 변화했다. 초창기에는 특정 무술 하나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급 선수들은 복싱과 킥복싱뿐만 아니라 레슬링과 주짓수까지 익히기 시작했다. 결국 오늘날 MMA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종합적인 경기력이 만들어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티토 오티즈, 척 리델, 랜디 커투어, 맷 휴즈, BJ 펜 등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했다. UFC 공식 자료에서도 이 시기의 선수들이 여러 영역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서 MMA가 ‘스타일 대 스타일’의 대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좋은 선수와 좋은 경기가 있다고 해서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2004년 말까지 UFC는 여전히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Zuffa 측에서도 사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당시 미국 내 에서 종합격투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자 대회조차 열 공간을 찾기 어려웠는데, 이 시기에 선뜻 나선 사람이 다름 아닌 현 미국 대통령인 도날드 트럼프다! 트럼프는 본래 wwe도 좋아해서 빈스 맥마흔과 친분이 있었고 심지어 빈스와 삭발 내기까지 했었던 경험도 있다...(마지막에 스톤콜드한테 스터너 맞은건 개그ㅋㅋ)

아무튼 트럼프가 데이나 화이트의 브리핑을 듣고는 쿨하게 본인 소유의 호텔에서 경기하도록 허락해 주었으며,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데이나 화이트는 트럼프에게 충성 맹세를 바치면서 따르는 중이다.

  UFC 공식 회고에서는 당시 조직이 상당한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었으며, 마지막 승부수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The Ultimate Fighter〉를 추진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UFC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005년 시작된 TUF(The Ultimate Fighter)는 단순한 격투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한 집에서 생활하며 훈련하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이 선수들의 실력뿐만 아니라 성격과 인간적인 이야기도 알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UFC 팬뿐만 아니라 MMA를 잘 몰랐던 사람도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TUF의 첫 번째 시즌 마지막에 역사적인 경기가 등장한다.

3. TUF 1과 그리핀 vs 보너 — UFC 흥행의 초석을 마련하다

 
 
 

  2005년 4월 9일, 〈The Ultimate Fighter〉 시즌 1 피날레에서 포레스트 그리핀과 스테판 보너가 맞붙었다. 두 선수는 TUF 첫 시즌에서 살아남은 라이트헤비급 선수들이었고, 이 경기는 UFC 계약을 놓고 벌이는 중요한 승부였다. 공식 경기 기록상 그리핀이 3라운드 종료 후 만장일치 판정으로 승리했다.

  그런데 이 경기의 진짜 의미는 승패에 있지 않았다! 두 선수는 경기 내내 엄청난 속도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한쪽이 공격하면 다른 쪽이 바로 반격했고,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두 선수 모두 지친 상태였지만 계속해서 싸웠다. 3라운드가 끝났을 때 관중들의 반응도 매우 뜨거웠다. UFC의 공식 회고에서도 이 경기를 UFC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평가하며, 두 선수가 보여준 경기력이 MMA 대중화에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부분이 있다. 원래 이 경기에서 승리한 그리핀이 계약을 가져가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경기의 수준과 두 선수의 활약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UFC 측은 보너에게도 UFC 계약을 제공했다.

  이 경기가 UFC 역사에서 특별한 이유는 MMA를 잘 모르던 사람도 ‘격투기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TUF는 경기장 안의 선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훈련과 갈등, 경쟁, 인간적인 모습을 TV를 통해 전달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리핀과 보너가 보여준 치열한 경기가 프로그램 전체의 클라이맥스가 됐다! 쉽게 말하면 TUF가 사람들에게 선수들을 알게 만들었다면, 그리핀과 보너의 경기는 사람들이 UFC를 계속 보고 싶게 만든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UFC 공식 자료에서는 당시 상황을 매우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TUF 1이 성공하면서 Spike TV가 다음 시즌을 계속 방영하기로 했고, UFC 역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역사적인 경기의 주연이었던 스테판 보너는 2022년 향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무쪼록, 이후 UFC는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척 리델, 랜디 커투어, 조르주 생피에르, 앤더슨 실바, 브록 레스너, 존존스, 론다 로우지, 코너 맥그리거 등 다양한 스타들이 등장했고, UFC의 경기 자체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캐릭터와 스토리도 흥행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후 UFC의 사업 규모는 계속 커졌다. 2016년에는 UFC가 엔데버와 투자 파트너들에게 인수되었고, UFC는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로 확장됐다. 또한 2019년부터는 ESPN과의 대형 미디어 계약이 시작되면서 UFC의 방송·스트리밍 영역도 크게 확대됐다. 2023년에는 또 하나의 큰 변화가 있었다. UFC와 WWE를 중심으로 한 TKO Group Holdings가 출범하면서 UFC는 글로벌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기업 구조 안으로 들어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코너 맥그리거 이후에 슈퍼스타가 생기지 않는게 팬으로서 아쉽다. 물론 토푸리아, 알렉스 페레이라 등 화끈하고 펀치 하나라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인기스타 돌주먹들이 존재하지만 캐릭터의 색채는 이전의 스타들에 비하면 옅은 편인건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vs 코너 맥그리거의 경기에서 줬던 긴장감과 흥행은 어떤 경기들보다도 소름을 돋게 하는 경기였다고 생각한다. 제2의 코너 맥그리거가 나오길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치고자 한다.